2025-05-15
<시광대리인>은 판타지, 미스터리, 힐링 요소가 결합된 중국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작품이다. ‘시광사진관’이라는 특별한 공간을 중심으로 세 명의 주인공이 초능력을 통해 사람들의 한을 풀어주고 감춰진 진실을 되찾아 주는 이야기다. 공개 이후 전 세계 시청자들로부터 꾸준한 호평을 받고 있다.
중국 독자들에게 ‘가장 친숙한 애니메이션 작품’이 무엇인지 물었을 때 80허우(後, 1980년대 출생자)와 90허우(1990년대 출생자)의 대답은 거의 대동소이하다. 대부분 <트랜스포머>나 <원피스> 등 미국과 일본의 유명 작품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00허우(2000년대 출생자)이나 10허우(2010년대 출생자) 등 중국의 신세대 독자들에게 같은 질문을 하면 훨씬 더 다양한 대답이 나온다. 이 중에는 <이인지하(異人之下)>나 <호요소홍냥(狐妖小紅娘)> 같은 중국의 오리지널 애니메이션·만화 작품도 적지 않다. 이러한 변화는 중국의 콘텐츠 제작사와 플랫폼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중국 애니메이션·만화 작품이 ‘아동용’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한층 더 확장적인 발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중국 내수 시장에서 독자들에게 인정받은 오리지널 애니메이션·만화 작품은 이제 중국을 넘어 해외 무대에서도 점점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중국 애니메이션·만화의 해외 진출
해외로 뻗어 가는 동양의 스토리
현재 중국 애니메이션·만화가 진출한 지역은 북미와 일본, 한국, 동남아 시장 중심이다. 그중 북미와 일본, 한국은 애니메이션·만화·게임·소설(ACGN)로 대표되는 소위 ‘2차원(二次元) 콘텐츠 산업’이 성숙한 지역이다. 게다가 깊이 있는 독서와 수준 높은 영상 콘텐츠 감상에 익숙한 소비층이 폭넓게 분포돼 있다. 동남아 지역에서는 <랑야방(瑯琊榜)>, <견환전(甄嬛傳)>, <연희공략(延禧攻略)> 등의 중국 드라마가 현지에서 높은 화제성을 일으키며 중국 오리지널 애니메이션·만화에 대한 독자들의 문화적 수용과 인식 기반을 형성했다.
중국 국가방송텔레비전총국 발전연구센터에서 펴낸 <중국 애니메이션 해외시장 개척 보고서(2023)>에 따르면, 중국의 애니메이션 작품은 전체 영상물 콘텐츠 수출액에서 6.14%를 차지하고 있고 수출 재생시간은 중국의 전체 수출 콘텐츠 재생시간에서 12.15%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애니메이션·만화 산업이 비교적 성숙한 북미 시장은 DC와 마블이라는 투 톱이 방대한 독자층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들 작품은 상대적으로 스타일이 단조롭고 동질화돼 있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시청자들도 점점 미국식 슈퍼 히어로물이라는 단조로운 취향에서 벗어나 보다 다양한 스타일의 애니메이션·만화로 눈을 돌리고 있다. 세계 최대의 애니메이션·만화 영어 DB 사이트 겸 소셜 플랫폼인 마이애니메리스트(MyAnimeList)에서는 중국 애니메이션·만화 작품 <시광대리인(時光代理人)>, <마도조사(魔道祖師)>, <천관사복(天官賜福)>이 100위권 안에 이름을 올리며 지속적으로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중이다. 동양의 판타지 작품들은 섬세한 줄거리와 감정 묘사, 동양 특유의 분위기를 내세워 점점 더 팬층을 확대하고 있다.
한편, 예전에는 한국과 일본에 중국 애니메이션·만화 작품이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몇몇 우수한 작품들이 시장 문을 두드리면서 현지에서도 인지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2021년에는 중국의 애니메이션 작품 <다이노 마이 프렌드(豬豬俠大電影-恐龍日記)>가 한국의 CGV, 롯데시네마 등 주요 영화관에서 개봉했고, 동시에 현지 VOD와 OTT에서도 공개됐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의 성장기를 참신한 시각적 효과로 꾸며낸 스토리는 한국 시장에서 상당한 호응을 얻었다. 이런 추세를 바탕으로 중국 내수 시장에서 인기를 끌었던 <청흘홍소두바(請吃紅小豆吧)>, <만성가(萬聖街)>, <비인재(非人哉)> 등 애니메이션 작품들도 2022년에서 2023년 사이 일본 TV 채널을 통해 시청자들과 만났고, <시광대리인>의 시즌1과 시즌2도 각각 2022년과 2024년 일본에서 방영됐다.
2021년, 애니메이션 영화 다이노 마이 프렌드가 CGV, 롯데시네마 등 한국 주요 상영관에서 개봉됐으며 동시에 현지 VOD와 OTT 플랫폼에도 공개됐다.
웹툰의 영상 콘텐츠화
IP 활용 가치를 높이는 새로운 시장
틱톡(TikTok)에서 조회수가 1억 뷰를 돌파해 화제가 됐던 <자객오육칠(刺客伍六七)>, <시광대리인>과 같은 중국의 애니메이션·만화 콘텐츠를 잘 살펴보면 지역 특색이나 전통문화에서 영감을 얻는다는 뚜렷한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그림체나 스토리 설정에서도 차별성이 명확하다.
“제 경험에 비춰볼 때 중국의 문화적 특징이 강할수록 오히려 해외에 진출하기 더 쉽다. 비주얼 설정이나 미술 효과 등은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한다. 독자들이 작품을 읽거나 시청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품의 핵심 내용만큼은 독자에게 친숙한 정서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천옌(陳䶮) 애니모어(Animore) 설립자 겸 대표는 자신이 에이전시를 맡았던 <비인재>를 예로 들어 분석을 이어갔다. “이 작품은 중국의 고대 신화 속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배경은 현대다. 신화 속 인물이 현대 사회로 들어와 살아간다는 설정이다. 도시의 직장인들에게 친숙한 줄거리가 많기 때문에 해외 독자들도 쉽게 공감할 수 있다.”
툭하면 수백억 뷰를 기록하는 글로벌 지식재산권(IP)과 비교하면 중국 오리지널 애니메이션·만화 IP는 아직 해외 정상급 작품들과 큰 격차가 존재한다. 중국 애니메이션·만화 작품은 독특한 그림체와 중국식 스토리텔링으로 일부 해외 독자를 끌어모는 데 성공했지만 다문화적 콘텐츠 표현 측면에서는 여전히 걸음마 단계다.
기존 IP의 영상 콘텐츠화를 통해 IP의 영향력을 높이는 전략은 이미 많은 사례를 통해 검증된 효과적인 방법이다. 미국의 애니메이션·만화 산업에서 탄생한 디즈니 공주나 마블의 슈퍼히어로 등이 그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한국 역시 만화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화 각색에서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다. <무빙>, <조명가게>, <미생>, <김비서가 왜 그럴까>, <지옥>, <지금 우리 학교는> 등의 한국 웹툰은 현지화된 각색과 상업성을 겸비한 제작을 통해 지속적인 ‘시청 열풍’을 불러왔고, 넷플릭스 등 OTT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를 무대로 방영되고 있다. 실제로 이러한 웹툰 각색은 중국 창작 애니메이션·만화 IP의 글로벌 시장 진출에도 중요한 수단이다. 지난 3년 간 중국에서는 <소년가행(少年歌行)>, <이인지하(異人之下)>, <대리사소경유(大理寺少卿遊)>(<대리사일지(大理寺日誌)> 각색) 등 원작 웹툰의 드라마화가 이뤄졌고, 해외 진출에도 성공했다. 이 중에서 <소년가행>은 미국의 OTT 플랫폼인 비키(Viki)에서 9.8점이라는 높은 평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현재 중국은 이런 몇몇 작품을 통해 해외 관련 플랫폼에서 꾸준히 좋은 평판을 쌓아가고 있다. 앞으로 시나리오 개발이나 기술적 부분만 더 다듬고 개선한다면 동양의 미학과 다문화적 서사를 겸비한 ‘명품 콘텐츠’를 탄생시켜 글로벌 시장에 더욱 다양한 문화적 시각과 혁신적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다.
글 | 왕자오양(王朝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