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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농가’의 역사와 기억


2025-02-25      

샤오강촌 조감도 사진/CNSPHOTO


유구한 역사와 활력을 지닌 땅 펑양은 ‘개혁의 고장’으로도 불린다. 이곳 주민들은 낡은 것을 헐고 새로운 것을 세우며, 용감하게 개척하는 ‘샤오강 정신’을 발휘해 왔다. 이곳은 또, 독특한 예술 형태인 '화고의 고장'으로 펑양만의 문화적 매력을 전승하고 있다.


면면히 전해오는 ‘샤오강 정신’

역사의 수레바퀴가 육중하게 굴러가는 속에서 펑양 땅에도 중국 전역을 뒤흔들어 놓은 일대 사건이 발생한다. 1978년 12월, 펑양현 남동부에 자리한 샤오강촌에서는 거대한 폭풍을 몰고 올 ‘농촌 개혁’이 조용히 진행되고 있었다. 마을의 18가구가 ‘다바오간(大包幹, 땅과 농기구를 나눠 각자 농사를 지은 뒤 인민공사에 의무 할당량을 내고 남은 수확량을 각자가 갖는 개별영농 방식)’을 최초로 실시해 인민공사(人民公社) 체제를 타파했다. 현재 중국 농촌의 기본 경영 제도로 자리 잡은 ‘가정연산승포책임제(家庭聯產承包責任制, 가정 생산량 연동 도급 책임제)’가 여기서 탄생했다.


당시 중국 농촌은 능력이나 성과에 상관없이 보수와 대우가 동일한 평균주의적 분배 방식 ‘한솥밥을 먹는(吃大鍋飯)’ 기본 체제로 인해 농민들의 생산 의욕이 크게 저하되고 서민들은 배를 곯기도 했다. “그 시절, 우리는 모두 구걸한 경험이 있다.” ‘다바오간’을 주도한 인물 중 하나인 옌진창(嚴金昌)은 샤오강촌의 농촌체험단지 <그 시절 농가> 초가집 안에서 18개의 붉은 지장이 찍힌 ‘책임서(責任書)’를 바라보며 40년도 더 된 옛일을 떠올렸다. “당시 샤오강촌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은 오직 ‘가난’뿐이었다.” 그는 작은 탄식을 내뱉었다. “농민들은 전부 낡은 초막에서 살았고, 지붕이 없는 집도 있었다.” 그러나 가난은 개혁의 필요성을 자각하게 했다. 18명의 선구자들은 어두컴컴한 초가집에 모여 지장을 찍고 은밀하게 ‘토지승포제(다바오간)’를 시도했다. “당시 정치적 상황에서 이런 일을 저지른다면 분명 감옥에 갈 것이 뻔했다. 우리는 모두 목숨을 걸고 있었다. 그러나 누가 알았겠나. 1년 만에 마을은 대풍작을 거뒀다. 마을 공동체의 총 생산량은 무려 6만 6500kg에 달했다. 이는 1955년부터 1970년까지의 총 생산량과 맞먹는 것이었다.”


현재 <그 시절 농가>의 내부에는 1970년대의 샤오강촌 농가 24가구의 일상과 생산 모습이 구현돼 있다. 또 외발 손수레와 부뚜막과 같은 옛 물건들을 전시해 방문객들이 진짜 ‘그 시절 농가’를 체험할 수 있도록 꾸몄다. 특히 1973년에 지어진 초가집은 현지에서 구한 띠풀로 덮었고 벽은 진흙과 볏집을 섞어 쌓아 올렸다. 방 내부에는 1978년 ‘다바오간’을 위해 서명하던 모습을 재현해 뒀다. “이제는 다들 여유가 생겼다. 저도 아들 가족과 함께 농가 체험 ‘팜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는데 살림이 갈수록 나아지고 있다.” 말을 마친 옌 씨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초가집 밖으로 나갔다.


현대식 펑양화고 공연을 펼치는 펑양의 젊은 여성 사진/위안수


작은 화고로 노래하는 삶

초가집 바깥에서 익숙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옌 씨를 따라 밖으로 나가니 갈대 풀로 둘러싸인 작은 무대 위에서 펑양화고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펑양을 얘기하고, 펑양에 대해 설명하자면, 펑양은 좋은 곳이라네”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에도 나오는 이 흥겨운 노래는 듣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펑양화고는 ‘쌍조고(雙條鼓)’라고도 불린다. 공연자는 한 손으로 양가죽 북을, 다른 손으로는 두 개의 얇은 대나무 막대를 묶은 북채를 잡은 뒤 북채의 앞부분으로 북면을 두드려 맑고 청아한 소리를 낸다. 명나라 때 시작된 펑양화고는 원래 유랑 예인의 구걸 수단으로 쓰이다 점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펑양화고 공연의 내용은 주로 소소한 일상들이다. 노랫가락은 귀에 쏙쏙 들어와 따라 부르기 쉽지만, 북소리를 명료하고 깔끔하게 내는 일은 쉽지 않다. 북채를 잡는 손동작은 젓가락을 집는 것처럼 중지와 약지를 절묘하게 구부려야 하고, 지름이 10cm에 불과한 북면을 두 개의 북채로 번갈아 가며 정확하게 두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초기 펑양화고는 주로 개인 공연으로 진행되거나 한 사람이 북을 치고 다른 사람은 소라(小鑼)로 반주하며 춤과 노래를 곁들인 형식이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오늘날 다양하고 새로운 형식으로 발전했다. “저희는 화고를 학생 체조, 직장 건강 체조, 광장무 등과 접목해 일반인들도 화고의 매력을 접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펑양화고 무형문화재 계승자 샤오칭훙(肖慶紅)의 말이다. 펑양화고의 역사는 600년이 넘었지만 그 인기는 지금도 여전하다. 최근 샤오 계승자는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화고 건강 댄스’를 창안해 펑양화고 문화와 매력을 널리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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