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15
2024년 11월, 대영도서관은 <경여년>, <투라대륙> 등 10편의 중국 웹문학 작품을 중문 소장 도서 목록에 수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2022년에 중국 웹문학 작품 16편이 도서관에 ‘편입’된 이래 두 번째다. 사진/ XINHUA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가 내 가장 좋은 서점에서도 중국 서가는 겨우 1미터 남짓이다.” 영국의 유명한 번역가이자 한학(漢學)자인 줄리아 로벨(藍詩玲, Julia Lovell)은 해외에서 중국 문학이 처한 어려움을 이렇게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이러한 상황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중국의 우수한 현대 문학 작품이 성공적으로 해외로 진출해 상당한 호평과 판매고를 올리고 있으며 세계가 중국을 이해하는 중요한 창구가 되고 있다.
좋은 스토리, 중국 문학의 해외 진출 견인
“우리는 늘 중국 문화의 독특한 매력과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은 소설에 목말라 왔다. 중국에 관심이 있는 해외 독자에게 선보일 만한 작품을 말이다. 그리고 드디어 ‘그것’을 찾아냈다.” 영국 펭귄 북스 아시아 총괄 톈페이(田培)가 말하는 ‘그것’은 바로 10여 년 동안 베스트셀러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150쇄를 넘게 찍은 소설 <늑대 토템(狼圖騰)>이다.
중국 현대 문학사에서 세계 무대로 성공적인 진출을 일궈낸 선구적 작품 <늑대 토템>은 한국어를 비롯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 47개 언어로 번역됐고 전 세계 120여 개 국가 및 지역의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초대형 베스트셀러다. 특히 권위 있는 펭귄 출판 그룹에서만 독자적으로 4종류의 영어판을 발간한 사실은 이 작품의 국제적인 위상과 폭넓은 수용도를 여실히 증명한다. 더불어 세계적인 명성의 프랑스 장 자크 아노(Jean Jacques Annaud) 감독 역시 이 책의 예술성과 메시지에 매료된 팬이다. 그가 5년에 걸쳐 촬영한 동명 영화는 프랑스 개봉 당일 8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해 당시 오스카상 작품상을 수상한 <버드맨(Birdman)>을 뛰어넘는 흥행 기록을 수립했다.
<늑대 토템>이 기념비적 성공은 무엇보다도 독특한 소재와 기이하면서도 매혹적인 서사에 힘입은 바 크다. 작가는 숨 막히는 인간과 늑대 간의 치열한 투쟁을 통해 드넓은 초원에서 수천 년 동안 유목민과 늑대가 맺어온 ‘애증의 굴레’ 속에서 갈등과 애착이 얽힌 미묘한 공존의 감정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도시 생활에 익숙한 현대인은 상상할 수 없는 신비한 광경을 펼쳐 보이며 강렬한 충격과 함께 긴 여운을 남기는 독특한 매력을 느끼게 했다. <늑대 토템>이 전 세계적으로 인정 받은 또 다른 이유는 전 인류를 관통하는 보편적 성찰이 있기 때문이다. 저명한 출판인 안보순(安波舜)은 “<늑대 토템>은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지혜를 담고 있다”라고 평가하며 “소설의 주제는 국경을 초월해 전 인류가 주목하고 고민해야 할 보편적 가치를 지닌다”라고 말했다.
근래 해외 문학계에서 가장 두드러진 영향력을 보여준 중국 소설은 단연 류츠신(劉慈欣) 작가의 공상과학소설(SF) <삼체(三體)>일 것이다. 이 작품은 지난 2015년, SF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휴고상에서 장편소설 부문 최우수작품상을 차지했다. 다섯 차례에 걸친 엄격한 투표 과정에서 시종일관 1위를 수성할 정도로 전 세계 SF 문학 팬덤 내에서의 압도적인 지지와 독보적인 위상을 보여줬다.
휴고상 수상 이후 <삼체>는 단순히 잘 팔리는 책 그 이상으로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 문화적 현상으로 자리 잡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SF 소설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도 <삼체> 영문판은 유명 서점의 가장 눈에 띄는 곳에 진열됐다.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판타지 소설인 조지 R. R. 마틴의 <얼음과 불의 노래> 시리즈와 나란히 자리했다. <삼체>의 팬 중 한 명인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이 책의 내용에 비하면 내가 의회와 겪는 다툼은 하찮게 느껴진다. 결국 나는 외계인의 침략을 걱정할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한국에서 <삼체>는 2013년에 초판 발행된 뒤 두 차례 개정을 거쳐 13쇄를 넘어서는 증쇄를 기록했으며 작년 한국 베스트셀러 순위 톱 10에 여러 번 올랐다. 이러한 뜨거운 반응은 <삼체>가 단순한 출판물의 성공을 넘어 한국 사회에서도 하나의 뚜렷한 문화적 흐름으로 자리매김했음을 시사한다.
<늑대 토템>과 <삼체>는 해외 진출에 성공한 수많은 작품 중 대표적인 작품일 뿐이다. 다채로운 스토리 외에 전 인류가 인정한 공동 가치가 많은 작품이 성공에 힘입은 바 크다. 언어와 문화라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넘어선 보편적인 감정과 사유는 문학이 국경을 초월해 소통하고 문화 교류의 굳건한 토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세계 4대 문화 현상’이 된 중국 웹문학
“현재 중국 웹문학의 해외 팬층이 두껍다. 중국의 웹문학, 미국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한국의 트렌디 드라마(Trendy Drama), 일본 애니메이션을 ‘세계 4대 문화 현상’이라고 꼽는 사람이 많다. 이것은 중국 웹문학이 세계 유행 문화 판도의 중요한 부분이 됐다는 것을 뜻한다.” 중국 웹문학 문학 시장의 선구자인 허우샤오난(侯曉楠) 웨원(閱文)그룹 CEO는 “중국 웹문학은 다채로운 스토리와 아름다운 상상력, 감동적 정서로 다양한 문화 배경을 지닌 사람들의 공감과 울림을 이끌어내며 해외 독자가 중국을 이해하는 중요한 창구 중 하나”라고 말했다.
웨원그룹이 최근 발표한 <2024 중국 웹문학 해외 진출 추세 보고서(2024中國網路文學出海趨勢報告)>에 따르면 중국 웹문학의 해외 이용자 규모는 전 세계 200여 개 국가와 지역에 걸쳐 약 3억 명을 돌파했다. 웨원그룹 산하의 해외 포털 사이트인 웹노블(起點國際, WebNovel)에 공개된 6000편 이상의 작품 중에서 조회수 1000만이 넘는 작품은 400편 이상이고 1억을 넘은 작품도 9편에 달한다. 이 가운데 현대 여성의 자립과 역경을 딛고 성장하는 모습을 그린 <허니만장광망호(許你萬丈光芒好)>는 4억 5000만 뷰 이상을 기록해 1위를 차지했다. 조회수 외에도 <경여년(慶餘年)>과 <두라대륙(斗羅大陸)> 등 26편의 작품은 대영도서관 중문관 장서 목록에 수록됐다. 이로써 중국 웹문학이 국제 주류 문화 기관에서 인정받는 글로벌 콘텐츠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이는 데이터에 국한되지 않고 중국 웹문학의 동양 문화 가치관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와 다양한 표현에서 비롯된 성과다.
“해외 독자가 특히 열광하는 무협·선협 등 우수 작품은 중국 웹문학이 세계 대중 문학에 기여한 바가 크다. 이들 작품은 독특한 동양의 신화 배경과 매력적인 캐릭터 원형을 주요 창작자원으로 삼아 재창조해 서구권 판타지 소설과 확연히 차별화된 독자적인 정신적 경지를 제공한다.” 왕샹(王祥) 루쉰(魯迅)문학원 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무협과 선협, SF 등이 초창기 중국 웹문학 시장의 비약적인 성장을 견인했다면 최근 수년간 웹문학은 현실에서 더욱 풍부한 영감을 얻고 일상 속에서 소재를 발굴해 폭넓은 발전 가능성을 확장해 나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왕 연구원은 이어 “이러한 흐름을 타는 작품들이 보편적인 삶의 희로애락에 깊이 스며들어 진솔한 울림을 선사할 수 있다면, 전 세계 독자들은 페이지 뷰를 넘길 때마다 더욱 생동감 있고 다채로운 중국의 모습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 | 돤페이핑(段非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