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30
북송 시대 화가 장택단(張擇端)이 그린 <청명상하도(清明上河圖)>는 12세기 북 의 수도였던 번화한 도시의 풍경을 생생하게 담아낸 중국의 전설적인 고전 명화 중 하나다. 그림 속에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등장해 당시의 활기 넘치는 사회상을 엿볼 수 있다.
중국화의 소재는 대체로 산수, 인물, 꽃·새·동물, 건축·수레·배 등을 중심으로 한 계화(界畫), 그리고 백성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풍속화로 구분된다. 내가 점점 산수화에 끌리는 이유는 아마도 나 자신이 산 속에 살고 있고 산과 물 사이의 여백을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산의 경치를 보고 있노라면 화가의 붓끝에서 자유로이 생동하는 구름과 물, 맑고 고아한 기운, 세속을 벗어난 듯한 초탈의 경지를 느낄 수 있다.
중국의 산수화 구도는 대개 좁디 좁은 화폭 속에서 절묘하게 배치돼 있다. 그 방대한 기세는 다른 예술 형식에서 쉽사리 찾아 보기 어렵다. 그러니 북송 시기 사(詞)에 뛰어났던 문인 진관(秦觀)이 그림을 감상하며 병을 고쳤다는 유명한 일화가 역사에 등장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진관은 오랫동안 위장병을 앓고 있었다. 어느 날 친구 고중(高仲)이 그를 찾아오며 수년간 소장하던 산수 명화를 가져왔다. 바로 당나라 시기 이름을 날린 시인이자 화가인 왕유(王維)의 <망천도(輞川圖)>였다. 고중은 진관에게 “이 그림을 자주 보면 병이 금방 나을 것”이라 하였고, 진관은 반신반의하며 가족들에게 그림을 침실에 걸어 두라 하였다. 그리고 매일 틈날 때나 침상에 누워 요양할 때 그림을 주의 깊게 감상했다. 그는 빼어난 산수가 그려진 <망천도>를 볼 때 황홀한 그림 속 정경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그림 속에서 느껴지는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숲에서 들려오는 듯한 새소리를 들으면 이내 정신이 맑아지고 활력이 샘솟았다. 연일 계속된 ‘화폭 속 유람’은 진관에게 잃었던 식욕을 되찾아줬고 오랫동안 그를 괴롭히던 고질적인 위장병마저 서서히 완화시키는 놀라운 효험을 보였다. 훗날 그는 서예 작품 <마힐망천도발(摩詰輞川圖跋)>에서 당시의 심오한 경험을 서술하기도 했다.
어릴 적 우리 집에는 중국 산수화 작품이 한 점이 걸려 있었고 아버지의 회사에도 한 점이 있었다. 당시 어린 내 눈에는 두 그림이 그저 똑같아 보였다. 산의 능선이나 구름·물의 위치, 심지어 그림 속 작은 사람의 모양도 거의 똑같았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께 두 그림을 바꿔 걸어도 아무도 모를 것이라 말했다. 아버지는 중국인들의 예술은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사승(師承)이 첫째이고 이것을 감상의 기준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설명하셨다. 또 중국 회화에는 저마다의 맥락이 있어 감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것을 논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덧붙이셨다.
중국 현대화가 딩제(丁傑)의 작품 <천지칠채(天地七彩)>
장다첸 선생의 예술혼은 다채로운 동물 그림들을 통해 발현됐다. 그중 <백원도(白猿圖)>는 흰 원숭이를 묘사한 작품으로 원숭이 얼굴 표정과 눈빛이 매우 생생한 것이 특징이다. 사진/XINHUA
먼 옛날 중국화를 그리던 고대 화가들은 아마 평생 단 한 분의 스승만 모셨을 것이다. 자신이 속한 화파에서 중시하던 기법 습득을 넘어 스승의 기개와 도량을 임모(臨摹)하며 이를 내재적 수양의 과정으로 삼았다. 창의적 발상이나 독자적 표현은 이러한 깊이 있는 수련 뒤 비로소 고려될 수 있는 가치였던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서양 예술은 숙련된 기교 외에도 혁신과 기존의 틀을 깨는 전복적인 시도를 중요한 예술적 가치로 강조한다. 이처럼 확연히 다른 토대 위에서 발전해 온 동양과 서양의 화풍은 우열을 논하거나 서로의 영역을 쉽게 넘나들 수 없는 고유한 예술 세계를 구축해 왔다.
북송 시대 화가 장택단(張擇端)이 그린 <청명상하도(清明上河圖)>는 12세기 북송의 수도였던 번화한 도시의 풍경을 생생하게 담아낸 중국의 전설적인 고전 명화 중 하나다. 그림 속에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등장해 당시의 활기 넘치는 사회상을 엿볼 수 있다.
장다첸 선생은 중국 근현대 미술사에 빛나는 중국화의 거장이다.
장다첸(張大千, 1899~1983) 선생은 20세기 중국 화단에서 불멸의 족적을 남긴 거장으로 회화, 서예, 전각(篆刻), 시사(詩詞)에 두루 통달한 중국화의 대가다. 1950년대에 그는 세계를 여행하며 서양 예술계로부터 ‘동방지필(東方之筆)’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의 화풍은 구속받지 않는 자유분방함과 세속을 초탈한 고결함을 담고 있고 운치도 풍부하며 특히 산수화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이뤘다. 장다첸 선생은 해외에 머물면서 정교하고 섬세한 공필화(工筆畵)와 자유롭고 생동감 넘치는 사의화(寫意畫)의 화풍을 결합해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예술 세계를 개척했다. 전통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혁신적인 시도를 감행했던 그의 학문적 접근법은 전통에서 현대로 나아가고자 하는 후대 화가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장다첸 선생은 타고난 예술가이면서 중국식 정원 조성에도 정통했다. 그는 33세 되던 해, 빼어난 아름다움으로 이름난 쑤저우(苏州)의 왕스위안(網師園, 망사원)에 1년 간 머물며 정원의 조경과 초목을 하나하나 세심히 관찰했다. 54세가 되어 브라질로 건너가 팔덕원(八德園)을 손수 조성했고, 69세에 미국으로 이주한 뒤 가이거(可以居)와 환필암(環篳庵)이라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어 냈다. 이 정원들은 모두 장다첸 선생의 예술적 안목과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가 고스란히 담긴 공간으로 세계적인 예술가들조차 경탄하며 방문을 갈망하는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타이베이(臺北) 와이솽시(外雙溪) 강변에 위치한 마야정사(摩耶精舍) 역시 타이완(臺灣) 문예계 인사들이 가장 사랑하는 정원이다. 운 좋게도 어머니를 따라 세 차례나 마야정사에 초대받을 기회가 있었다. 정원 곳곳에 자리한 다양한 식물과 기암괴석, 연못에서 노니는 물고기,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와 재롱을 피우는 원숭이 그리고 바비큐 그릴과 파오차이(泡菜) 항아리까지. 이 모든 요소들이 무척 인상 깊었다. 가장 특이했던 것은 시력 문제로 불편함을 겪던 장씨 아저씨가 집 안에서도 마음껏 정원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창문에 설치해 둔 이동식 확대경이었다.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이 느껴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장씨 아저씨는 이름난 미식가이자 손님 대접을 즐기는 분이기도 했다. 누구나 아저씨 집의 맛있는 요리를 부러워했다. 요리 하나하나에는 정성이 가득했고 또 저마다의 스토리도 담겨 있다고 들었다. 당시 어렸던 나는 식탁에 앉아 어른들의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를 들었지만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도 많았다. 나는 언젠가 어머니가 들려줬던 장대천 선생의 젊을 적 무용담을 떠올리며 그의 인자한 얼굴과 가슴에 드리운 은빛 수염을 멍하니 바라보며 터무니없는 상상에 빠졌다. ‘장씨 아저씨의 형이 집을 비웠을 때, 형이 기르던 호랑이가 한밤중에 야식을 찾으러 어슬렁대다 그의 침상까지 찾아와 머리를 내밀면 무섭지 않을까?’ ‘아저씨가 산적들에게 납치 당했을 때, 그가 글을 쓸 줄 안다는 이유로 산채의 막료로 모시며 함께 약탈을 강요하면 그는 몰래 도망칠 생각을 하지 않을까?’ ‘약혼녀가 불행히 세상을 떠나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었는데, 100일째 되는 날 형이 역에서 그를 붙잡아 환속시키려 했을 때 그는 순순히 따랐을까?’ 물론 이 모든 것들은 당시 어린 나의 상상에 불과할 뿐, 감히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격동의 대시대라는 웅장한 역사 위에 펼쳐진 장다첸 선생의 발자취는 기인과 기사로 가득 찬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그의 숭고한 인품은 도량과 의기(義氣), 깊은 학문적 수양으로 완성됐으며 천부적인 재능에 안주하지 않고 스승의 가르침에 안주하지 않고 꾸준한 독서와 탐구, 임모와 유력을 통해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형성했다. 그의 그림은 고전의 깊이를 탐색하는 동시에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혁신을 포괄하며 전통과 창조의 절묘한 조화를 이뤄냈다. 특히 먹의 농담과 번짐을 자유자재로 구사한 ‘발묵산수(潑墨山水)’ 기법으로 중국 수묵화의 신기원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대해 치바이스(齊白石) 선생은 “한 획 한 획마다 이미 그 뜻이 붓끝보다 앞서 있으며 그 정신은 옛 거장들과 하나로 어우러진다(一筆一畫 無不意在筆先 神與古會)”라며 격찬했다. 쉬베이훙(徐悲鴻) 선생 역시 “지난 500년 간 이러한 인물은 오로지 장다첸 한 사람뿐(五百年來一大千)”이라며 그의 업적을 칭송했다.
<전가> 소개
타이완(臺灣) 작가 야오런샹이 7년 만에 탈고한 역작으로 각각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권으로 이뤄져 있다. 각 권마다 6개의 주제로 나뉘며, 유려한 글과 생동감 넘치는 사진으로 중국인들의 계절별 생활 방식과 전통문화를 기록했다. 저자는 자신의 ‘전가’를 통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저마다의 ‘전가’를 갖게 되기를 희망한다. 이 책은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소장해야 할 ‘전통문화 백과사전’이자, 과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중국인의 생활 속 지혜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외국인들을 위한 ‘입문서’이기도 하다.
저자 소개
야오런샹(姚任祥), 중국의 유명 경극 배우 구정추(顧正秋)의 막내딸이자 국학(國學) 대가 난화이진(南懷瑾)의 제자. 16세에 데뷔한 ‘1세대 캠퍼스 민요 가수’ 중 한 명이다. 타이완의 유명 건축가 야오런시(姚仁喜)의 아내이자 세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주얼리 디자이너로 20년 넘게 아름다운 작품을 디자인했으며, 작가로서 해외에서 유학 중인 중국 청년들이 전통문화를 잊지 않도록 가르침을 전수하기 위해 <전가>를 직접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