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04
얼마전 필자가 방문한 중국 충칭(重慶)의 대표 관광명소인 산성보도(山城步道). 충칭에서 보행만 가능한 산책길이란 뜻의 이곳엔 트렌디한 카페와 식당이 즐비해 있다. 눈에 띈 것은 산책길 옆 등불에 새겨진 글자. ‘츠가가(吃嘎嘎)’,‘바스(巴适)’,‘야오데이(要得)’, ‘야오부다오타이(幺不倒臺)’, ‘마오피피(冒皮皮)’ 등 충칭인들이 주로 쓰는 사투리가 해설과 함께 써있는 게 아닌가. 베이징(北京)에서만 3년 거주한 필자는 처음 보는 단어들이었다. 덕분에 츠가가는 ‘고기를 먹다’, 바스는 ‘편안하다’, 야오데이는 ‘알겠다’, 야오부다오타이는 ‘엄청나다’, 마오피피는 ‘허풍떨다’는 뜻의 충칭 사투리라는 것을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됐다.
중국은 방언의 천국이다. 같은 문자와 어법을 사용하지만 발음과 억양이 지역별로 천차만별이다. 중국 전역에 백여 종의 방언이 존재하며 푸퉁화(普通話, 표준어) 발음만 알아서는 이들 방언을 알아듣지 못한다. 외국인은 더더욱 그렇다.
지난해 중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왕자웨이(王家衛) 감독의 드라마 <판화(繁花, 번화)>. 1990년대 상하이(上海)를 배경으로 그린 이 드라마에서는 주인공들이 상하이 사투리를 맛깔나게 구사해 극의 생동감이 느껴지는데 안타깝게도 외국인인 필자는 자막 없이는 알아듣기 힘들었다.
홍콩 영화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중국서 특별판으로 재개봉한 왕자웨이 감독의 대표작 <화양연화(花樣年華)>를 영화관에서 보는데, 남녀 주인공인 량차오웨이(梁朝偉)와 장만위(張曼玉)가 구사하는 광둥(廣東) 사투리를 전혀 알아들을 수 없어 스크린 아래 자막만 뚫어지게 쳐다봤던 기억이 있다. 영어로 캔토니즈(Cantonese)라 불리는 광둥 사투리는 광둥성과 중국 홍콩과 중국 마카오 지역 그리고 동남아 화교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주요 사투리 중 하나다.
필자가 살고 있는 베이징(北京)도 중국의 수도로 당연히 다들 푸퉁화를 쓰지만 사실 베이징도 사투리가 있다. 특히 ‘라오베이징런(老北京人·베이징 토박이)’들은 말할 때 ‘얼화(兒化)’가 심하다. 대화할 때 단어나 문장 끝에 ‘얼(er)’을 붙여 말해서 베이징 사투리를 ‘얼화’라고 부른다. 솔직히 고백하는데 필자는 베이징에서 3년째 살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베이징 토박이 택시 기사들의 얼화를 못 알아들어서 ‘열차에 두 번 치이는 기분’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글|배인선(한국), 한국 아주경제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