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16
중국 고사성어 가운데 단결과 협력에 관련된 표현은 매우 많다. 예컨대 ‘중지성성(眾志成城)’, ‘만중일심(萬眾一心)’, ‘제심협력(齊心協力)’, 그리고 오늘 이야기할 ‘동주공제(同舟共濟)’ 등이 있다. 중화민족은 예로부터 ‘단결의 민족’으로 불려왔다. 선진(先秦) 시대 <상서(尚書)>에는 요(堯) 시대 ‘협화만방(協和萬邦)’이라는 상황이 기록돼 있다. 이는 초기 국가 간 단결과 협력이라는 이념이 오래전부터 자리 잡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대우(大禹) 시대에는 천하를 아홉 개의 주(州)로 나눠 ‘구주공관(九州共貫)’, 즉 다양성과 통일이 공존하는 질서 있는 천하대일통(天下大一統)구도를 형성했다. 이는 단결과 통합을 추구해 온 중화민족의 국가관을 잘 보여준다. 오늘의 주제인 ‘동주공제’는 바로 이러한 중화문화 속 단결과 협력 정신을 대표하는 고사성어라 할 수 있다.
유래와 고사
‘동주공제’라는 말은 손무(孫武)가 지은 <손자병법(孫子兵法)>에 처음 등장한 표현이다. 이 말은 거센 바람과 폭우 속에서 한배를 탄 사람들이 함께 풍랑을 헤쳐 나간다는 의미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 운명을 함께하고 협력하는 태도를 비유한다. 손무는 손자(孫子)로도 불리며, 춘추 시대의 저명한 군사 전략가이자 정치가였다. 후대 사람들은 그를 ‘병성(兵聖, 전쟁의 성인)’이라 부르며 존경했다. 그는 병법 이론에 정통했으며 <손자병법>에는 그의 탁월한 군사 전략 사상이 집대성돼 있다. 이 책은 중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병서(兵書)이자 세계 최초의 군사 전문 저작물로 평가받는다. ‘동주공제’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진다.
어느 날, 누군가가 손무에게 어떻게 군사를 운용해야 패하지 않는지 물었다. 손무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이 뱀의 머리를 때리면, 뱀은 꼬리로 반격할 것이다. 당신이 뱀의 꼬리를 공격하면, 뱀은 머리를 이용할 것이다. 당신이 허리를 공격하면 뱀은 머리와 꼬리를 모두 써서 네게 달려들 것이다. 따라서 진형을 잘 짜는 장수는 군대를 뱀의 형상과 같이 유기적으로 배치해 전단의 공격과 후단의 지원이 상호 연동되도록 운용해야 한다. 이같이 전·중·후방이 하나의 통합된 체계를 이뤄 서로를 굳건히 지킨다면 적의 어떠한 공격에도 무너지거나 와해되지 않을 것이다. ”
이 말을 들은 사람은 군대를 뱀처럼 배치하면 승산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다시 의문을 품고 물었다. “과연 병사들이 뱀의 머리와 꼬리처럼 서로 도울 수 있을까요?”
손무는 다시 이렇게 갈파했다. “전장은 생사를 가르는 곳이다. 그런 절박한 상황은 병사들이 반드시 한마음이 되게 만든다. 비유컨대, 두 명의 원수가 있다고 치자. 평소 상호 적대시하는 관계지만 동일한 선박에 탑승해 험난한 해역을 항해하던 중 예측 불허의 강풍과 격랑에 직면해 침몰 위기에 처하게 되면 그들은 과거의 묵은 원한을 잠시 접어두고 생존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필사적으로 협력해 파국을 모면하려 할 것이다. 앙숙도 존망의 위협 앞에서 ‘동주공제’ 할 수 있는데 하물며 원수도 아닌, 끈끈한 유대감으로 결속된 아군 장병들의 협력은 가히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할 것이다. 그러므로 잘 훈련된 군대는 필연적으로 머리와 꼬리가 상호 보완하며 위기를 공동으로 타개하는 뱀과 같은 유기적인 존재가 되기 마련이다.”
손무의 설명을 경청한 그는 이치에 깊이 감탄하며 손무에 대한 존경심을 더욱 품게 됐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난관에 봉착했을 때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힘든 시기일수록 서로 굳게 결속해 지혜를 모으며 함께 도와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설사 과거에 원한이 있고 적이라 하더라도 위기 속에서는 이전의 앙금을 풀고 하나로 뭉쳐야만 생존의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
중화문화와 동주공제
손무로 위시한 병가(兵家) 사상은 단결과 협력을 필수적인 가치로 여기는데 이는 전술 운용에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중화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유가(儒家) 사상 역시 곳곳에서 ‘동주공제’ 정신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는 중국인들의 처세 원칙과 행동 방식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전통 사상 관점에서 볼 때, ‘동주공제’는 유가 문화의 핵심가치인 ‘인(仁)·화(和)·동(同)’의 정신을 잘 담고 있다. 인(仁)은 사람 간의 사랑과 존중, 관용을 중시한다. 이는 동주공제의 정신적 토대가 되어 공동의 어려움 앞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돕는 연대 의식을 발휘하게 된다. 화(和)는 사회 구성원 간 조화와 화목을 추구한다. 이는 단결과 협력을 강조하는 동주공제와 일맥상통한다. 구성원 간 원만하고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해야만 비로소 마음과 힘을 한곳으로 모아 난관을 극복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전통 사회는 구성원 모두가 평등하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이상적인 공동체인 ‘대동(大同)’사회 실현을 염원해 왔다. 대동사회 핵심 정신은 ‘자기 부모만을 사랑하지 않고, 자기 자식만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不獨親其親,不獨子其子)’라는 구절에 잘 나타나 있다. 이는 천하를 하나의 가족과 같이 여기는 보편적인 사랑의 정신을 의미하며 공동체 의식과 사회적 책임감을 함양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중화문화 속에서 용선(龍舟)과 장성(長城)은 동주공제 정신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상징이다. 용선 경주는 북을 두드리는 사람, 방향을 잡는 키잡이, 노를 젓는 선수들이 각자의 역할은 분명하지만 그들의 움직임은 빈틈없이 조화를 이루며 물결이 스칠 때마다 선수들의 힘이 하나의 의지로 응축돼 강력한 단결과 협력의 에너지를 발산한다. ‘한배를 타고 함께 강을 건넌다’라는 용선 정신은 오랜 세월 동안 중화민족의 혈맥 속에 깊이 각인돼 내려오고 있다. 웅장하고도 견고한 장성의 축조 모습 또한 다르지 않다. 돌을 캐고, 나르고, 마침내 거대한 성벽을 쌓아 올리는 축성까지 모든 과정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돼 있다. 이처럼 수많은 이들의 협력과 노력을 통해 오늘날의 장성이 위용을 떨치게 됐다. 장성은 단순히 외적의 침입을 막는 방어선을 넘어 역경에 굴하지 않고 굳건히 단결하는 중화민족의 강인한 정신과 불굴의 의지를 웅변하는 살아있는 역사 그 자체다.
오늘날에도 ‘동주공제’의 정신은 깊은 울림과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 전 세계적 여러 위기에 맞서 각 국가는 국경을 넘어 경험을 공유하고 손을 맞잡아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다. ‘푸른 산이 같은 구름과 비를 맞고, 밝은 달이 비치는 곳이 어찌 서로 다른 두 곳이랴(青山一道同雲雨,明月何曾是兩鄉)’ 왕창령(王昌齡)의 <송시시어(送柴侍御)>에 나오는 유명한 시구처럼, 비록 다른 곳에 있어도 마음은 하나 되는 깊은 정이 바로 ‘동주공제’의 가장 진실한 표현일 것이다.
글|칭산(靑山)
사진 | 인공지능(AI) 생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