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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가 어우러진 도시의 유전자


2025-07-10      

한단시 광부고성의 태극권 공연 현장 사진/CNSPHOTO


한단은 문(文)과 무(武)의 정수를 고루 갖춘 천년 고도다. 먼저 ‘문’을 살펴보면, 이곳은 총 1584개의 사자성어와 고사가 숨 쉬는, 그야말로 ‘살아 있는 박물관’이다. 학보교에는 ‘한단학보’가 전하는 교훈이 여전히 남아 있고, 회차항(回車巷)에는 ‘부형청죄(負荊請罪, 가시나무를 지고 잘못을 사죄하다)’에 얽힌 숭고한 이야기가 지금도 회자된다. 한편, ‘무’의 모습은 광부고성의 아침 햇살을 따라 흐르는 태극권의 그림 같은 동작에서 잘 드러난다. 특히 양씨태극권(楊氏太極拳)은 창시자의 생가로부터 학교, 광장으로 퍼져나가며 ‘이유극강(以柔克剛,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이긴다)’의 심오한 지혜를 이 도시의 유전자 속에 깊이 각인시켰다.


<문> 살아 숨 쉬는 성어의 도시

중국에는 한단에서 유래했거나 한단과 연관된 고사성어가 무려 1584개에 달한다. 한단의 거리와 골목을 거닐다 보면 그 고사들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장소들을 곳곳에서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한단을 여행할 때는 ‘고사성어 지도’를 손에 들고 다니는 것도 좋다. 귀에 익은 고사성어들은 거리와 건물 속에 고스란히 스며 있고 지금도 한단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전국(戰國) 시대, 한단을 방문한 연(燕)나라의 한 소년이 한단 사람들의 걸음걸이가 품위 있고 아름답다고 여겨 이를 흉내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국 그 소년은 걸음걸이를 배우지 못하고, 본래의 걸음걸이마저 잊어버렸다. 이 이야기는 훗날 남을 어설프게 흉내 내다 자신이 가진 재주마저 잃게 된다는 뜻의 ‘한단학보’라는 사자성어로 발전했다. 오늘날에도 한단 시내 중심에 있는 학보교에는 세월에 바래고 풍화된 글귀가 남아 있다. “그대는 연나라 수릉(壽陵)의 젊은이가 한단에서 걸음걸이를 배우려 한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는가?”라는 이 문구는 ‘한단학보’의 고사를 전하는 동시에, 전국 시대에 한단이 이미 ‘예의의 고장’으로 여러 나라의 본보기가 됐음을 말해준다.


한단 기차역에서 멀지 않은 구시가지 거리에는 매우 짧고 좁은 골목인 ‘회차항’이 있다. 전국 시대에 조(趙)나라 문신 인상여(藺相如)는 진(秦)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돼 적을 막는 데 뛰어난 계책을 내놓아 그 공로로 대장군 염파(廉頗)보다 지위가 높은 상경(上卿)에 봉해졌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염파는 인상여에 모욕을 주겠다고 큰소리치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이 좁은 골목에서 마주쳤다. 인상여는 대승적 차원에서 염파에게 길을 양보했고, 이에 크게 감명받은 염파는 윗옷을 벗고 등에 가시나무를 짊어진 채 인상여의 집을 찾아가 용서를 구했다. 이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은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벗이 됐다. 조나라의 장수와 재상이 화합하자 국세 또한 크게 떨쳤다. 이 이야기는 훗날 ‘부형청죄’라는 고사성어로 전해지게 된다. 회차항을 천천히 거닐다 보면 오래된 거리 특유의 여유롭고 한적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다만 가끔씩 울려 퍼지는 행상인들의 외침 소리와 도시를 철거하는 기계들의 굉음이 뒤섞여 마치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또 다른 세상에 온 것만 같다.


<무>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이기는 지혜

새벽 어스름이 감도는 고요한 광부고성에서 양씨태극권의 5대 전승자인 양전허(楊振河) 씨의 실루엣이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천천히 ‘춤을 추듯’ 움직이고 있다. 그의 동작은 유연하고 운율감이 넘치며 고성의 깊은 역사, 주변의 자연 경관과 완벽한 혼연일체가 된 듯하다. 한단 시내에서 북동쪽으로 차를 몰아 40분쯤 가면 26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광부고성에 도착한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웅장한 해자(垓子)의 모습이다. 고성을 감싼 해자와 잔잔한 수면 위로 반짝이는 햇빛이 주변의 성벽과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낸다. 성문을 지나 광장 안으로 들어서면 강건하면서도 절도 있는 몸짓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태극권 수련자들을 볼 수 있다. 그 광경을 보고 있으니 어느새 태극권의 세계 속으로 깊이 이끌린다.


광부고성은 3066.67ha에 달하는 규모의 융녠(永年) 와지(窪地, 움푹 패어 웅덩이가 된 땅)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성벽 둘레는 4.5km에 달하고, 저지대 안에는 사계절 내내 물이 고여 있어 메마른 대지 위에 수성(水城)이 솟아있는 독특한 경관을 자랑한다. 이러한 지형적 특성 때문에 광부고성은 ‘북국(北國)의 작은 강남(小江南)’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곳은 태극권 대중화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태극권법이 시작된 곳은 허난성이지만, 창시자인 천(陳) 씨 가문 내부에서만 전해지던 이 무술은 권법을 배우기 위해 한단에서 찾아온 양로선(楊露禪)에게 전수되며 변화를 맞이했다. 그는 동작을 단순화하고 격투 기능이 약화시킨 ‘양씨태극권’을 확립했고, 이때부터 태극권은 세상에 널리 알려지며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국민 운동’으로 자리잡았다. 고성의 남문 바깥에는 소박하고 아담한 분위기의 작은 뜰이 있다. 바로 양로선의 생가다. 청(淸)나라 말기에 세워진 이 가옥은 푸른 돌담과 벽돌 벽이 확연한 전형적인 북방 민가의 특징을 지닌다. 대문을 들어서면 내부가 보이지 않도록 세운 조벽(照壁)이 보인다. 그 위에는 태극과 팔괘(八卦)의 조화와 통일을 상징하는 팔괘 문양이 그려져 있다.


광부고성이 위치한 융녠구에서는 광장과 공원, 주택가 어디든 태극권과 태극검(太極劍)을 수련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야마분종(野馬分鬃)’, ‘백학량시(白鶴晾翅)’, ‘루슬요보(摟膝拗步)’ 등 다양한 동작을 통해 수련자들은 강함과 부드러움이 어우러진 태극권의 매력을 보여준다. 이곳에서 태극권은 단순히 중장년층에게만 인기 있는 운동이 아니다. 오히려 남녀노소 누구나 신체 건강을 유지하고 심신을 단련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인식된다. 태극권은 지역 내 학교의 쉬는 시간 체조와 체육 수업에도 도입돼 학생들에게 보급되고 있다. 융녠구 제2실험학교 체육 교사 마쉬강(馬旭剛) 씨는 “태극권은 동적인 움직임과 정적인 자세가 조화를 이루는 운동이다. 몸을 움직이며 체력을 기르고, 차분한 자세를 통해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 학생들의 산만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두뇌의 피로를 덜어주며 학습 효율을 높여준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요즘은 태극권을 배우는 아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태극권을 배운 뒤 학업 성적이 오른 학생들도 꽤 많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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