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25
성큼 다가온 여름, 더위를 식히기에 활기 넘치는 야시장만큼 좋은 피서지도 없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일찍이 조선 시대에는 장이 서는 날이면 사람들이 모여 물건을 사고팔고 장터에서 펼쳐지는 공연을 즐기곤 했다. 일부는 낮부터 밤까지 이어졌는데 이것이 오늘날 야시장의 원형이라 볼 수 있다. 1950년 전쟁 발발 이후 폐허가 된 한국 사회에서 많은 이들이 생계를 위해 노점을 시작했고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포장마차’였다. 다양한 먹거리와 야식을 파는 포장마차는 이제 한국 도시의 밤 문화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2013년, 부산 부평깡통시장은 한국 최초의 상설 야시장으로 재탄생했다. 이곳에는 다양한 먹거리와 물건들이 즐비하며, 가격도 합리적이고 전통시장 특유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개장 이후 부평깡통시장은 현재까지 부산을 대표하는 명소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서울 광장시장의 야시장은 필자가 자주 찾는 곳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이 전통시장에서는 원조 녹두빈대떡, 김밥, 순댓국 등 다양한 먹거리를 판매하고 있고 서울 서민들의 음식 문화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야시장을 둘러본 뒤에는 청계천을 포함한 인근 구도심 중심지에서 천천히 산책할 수도 있으니 이보다 더 여유롭고 기분 좋은 밤은 없을 것이다.
좀 더 소박하고 정감 있는 저잣거리의 분위기를 원한다면 대구 서문시장도 추천할 만하다. 이곳은 노점도 많고 사람은 더욱 많다. 여름밤, 노점 옆 간이 식탁에 앉아 족발에 막걸리를 곁들이며 옆 사람들끼리 나누는 구수한 사투리 대화를 듣고 있노라면, 이런 인간미 넘치는 풍경이야말로 전 세계 어디에서나 통하는 행복의 진리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상설 야시장 외에도 2015년, 서울시는 ‘밤도깨비 야시장’ 운영을 시작했다. 이후 한강 달빛 야시장, K푸드 페스티벌 넉넉 등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여름과 가을철 주말이면 여의도와 반포 등 한강공원과 청계천 등지에서 기간 한정 야시장이 열린다. 기발하고 익살맞은 요괴 ‘밤도깨비’는 밤중에 불쑥 찾아오는 작은 즐거움을 뜻한다. 베이징(北京)에서 나고 자란 80허우(後, 1980년대 출생자)인 필자는 어린 시절 밤이 되면 떠들썩하고 활기로 가득했던 거리, 사람들이 친근하면서도 얄궂게 ‘귀가(鬼街, 귀신 거리)’라 불렀던 곳이 종종 생각난다. 나중에는 음식 문화를 상징하는 ‘궤가(簋街)’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서울의 ‘밤도깨비 야시장’을 떠올릴 때마다 사람들의 밤에 대한 기대와 상상은 참으로 닮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선선한 강바람이 콧등을 간지럽히는 어느 여름밤, 한강의 물결 위로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고 푸드트럭에서 사 온 매콤 달콤한 떡볶이를 먹는 순간, 야시장은 단순한 소비 공간을 넘어 도시의 다채로운 삶과 문화가 생동감 있게 펼쳐지는 하나의 근사한 무대가 된다. 북적이는 인파 속에서 피어오르는 맛있는 냄새와 정겨운 대화 소리 등 문득 사람의 온기가 그리워지는 날, 가까운 야시장을 찾아 그 활기찬 풍경 속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
글|쑹샤오첸(宋筱茜), 한국 이화여자대학교 한국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