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10
편집자 주
이번 호 커버스토리에서는 한국의 ‘이재명 시대’를 맞이해 새로운 출발점에서 바라보는 중한관계의 본질과 나아갈 길에 대해 조명했다. 이제 시야를 동북아 전체로 넓혀 중일한 3국의 관계에 주목하고자 한다. 3국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거대 경제권이자 지리적으로 인접하고 문화적 뿌리를 공유하는 이웃 국가다. 3국의 상호작용은 단순히 국가 간 관계의 합이 아니라 동북아 지역의 안정은 물론 글로벌 거버넌스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2025년 올해는, 작년 제9차 중일한 지도자회의가 재개된 이후 중요한 전환점을 맞는 해이다. 3국은 2025~2026년을 ‘중일한 문화교류의 해’로 정하고 지난 4월 도쿄에서 개막식을 개최해 3국의 협력에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었다.
이번 호에서는 중일한 3국의 전문가들을 특별 초청해 역사적 맥락, 청년 교류, 제도 구축 등 다각도에서 3국 관계의 현재 과제와 미래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또한, 협력 가능성과 도전 과제를 분석해 더욱 긴밀하고 탄력성 있는 3국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실질적인 제언을 하고자 한다.
가까운 이웃일수록 더 깊은 이해와 존중으로 관계를 가꿔 나가야 한다. 이러한 숙고가 독자 여러분들에게 3국 관계의 다층적인 면모를 제시하고 지역 협력에 실질적인 사고와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문화 융합과 청년의 힘
한중일, 미래를 향한 약속
글| 이희섭, 한중일 3국 협력사무국(TCS) 사무총장
문화 교류는 서로의 마음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가장 좋은 연결고리이며, 미래를 이끌 청년 세대의 교류를 확장하는 효과적인 가교 역할을 한다. 2024년은 한중일 협력 25주년이 되는 해이자, 4년 5개월 만에 3국 지도자회의가 재개된 뜻깊은 해였다. 이는 3국 협력의 재출발과 교류·협력 재활성화에 새로운 모멘텀을 제공하는 계기가 됐다.
제9차 한중일 지도자회의에서 2025~2026년을 ‘한중일 문화교류의 해’로 정했다. 지난 4월, 3국은 도쿄에서 문화교류의 해 개막식을 개최했으며, 현재 인문 분야의 교류 및 협력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한중일 협력사무국(TCS)은 3국의 다양한 분야에서 실질적인 협력을 추진하는 정부 간 국제기구다. 향후 2년 동안 ‘동아시아 문화도시’, ‘한중일 예술제’, ‘한중일 문화교류 포럼’ 등 다양한 사업들을 통해 세 나라 국민 간의 상호 이해를 심화시키고, 공감과 우정의 토대 위에서 밝은 미래를 향한 새로운 협력 기회를 함께 만들어갈 것이다.
문화 교류 외에도, TCS는 청년, 인문, 지방 등 분야에서의 교류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국민 간 상호 이해와 신뢰 증진에 힘쓰고 있다. 특히 청년 교류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이는 청년 교류가 3국의 지속 가능하고 안정적인 협력의 핵심 동력이기 때문이다. 미래의 주인공인 청년 세대의 인식과 가치관은 동북아시아의 미래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청년들 간의 상호 이해와 우호적 감정은 동북아의 평화, 공동 번영을 위한 견고한 토대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 TCS는 ‘3국 청년 모의 지도자회의’, ‘청년 대사 프로그램’, ‘청년 스피치 콘테스트’, ‘캠퍼스 아시아 동문 워크숍’ 등 8개 청년 교류 프로그램을 통합한 청년 통합네트워크(TYEN)’를 구축해 청년 교류를 확대 및 심화해 나가고 있다. 3국 청년들의 진정성 있는 교류는 관점의 차이를 좁히고 상호 신뢰를 쌓아 3국 협력의 미래를 더욱 밝게 할 것이라 믿는다.
2023년 9월, TCS 사무총장으로 취임한 뒤 여러 계기를 통해 3국의 많은 청년들과 만남을 가져왔다. 다양한 주제에 대해 진솔하게 교류하고 상호 이해 속에서 우정을 키워나가는 청년들의 모습을 보며, 3국이 동북아의 밝은 미래를 함께 그려나가는 생생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뿌듯하다. 이처럼 개방적이고 솔직한 교류로 3국 간 관점의 차이를 좁히고 상호 신뢰를 높임으로써, 풀뿌리 민간교류의 저변을 꾸준히 넓히고 3국 협력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한 기반을 공고히 할 것이다.
TCS는 매년 3국 국민들의 온라인 투표를 통해 ‘한중일 올해의 단어’를 선정하는데, 올해는 ‘미래(未來)’가 선정됐다. 이 단어에는 동북아가 직면한 복합 위기와 도전을 지혜롭게 대응해 공동 번영과 평화의 미래를 향해 함께 손잡고 나아가기를 바라는 3국 국민들의 공통된 염원과 열망이 담겨 있다. 3국 청년들이 서로 간의 거리를 좁히고 우정을 더욱 깊이 쌓아 상호존중과 호혜공영을 기반으로 서로 다른 의견을 포용하고 공감대를 모아 미래의 교류·협력 기회와 잠재력을 함께 발굴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이웃, 정서적 간극 해소
새로운 일중한 관계 구축을 위한 돌파구
글| 미야모토 유지(宫本雄二), 전 주중국 일본대사, ‘베이징-도쿄 포럼’ 일본 측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일중우오회관 관장
일본 후쿠오카현 다자이후시에서 태어나 인생의 18년을 보냈다. 어린 시절, 가끔 라디오에서 한국어 방송을 듣곤 했다. 아무래도 후쿠오카와 부산은 거리가 정말 가까우니까. 아동용 <삼국지(三國志)>도 자주 읽었는데, 제갈량을 매우 존경하긴 했지만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조운(趙雲)이었다.
이 이야기를 한 이유는 일중한 3국이 지리적, 문화적으로 이렇게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정상적인 대화조차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었다는 점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주애틀랜타 총영사로 근무하던 시절, 현지의 일본 신문을 통해 흥미로운 사실을 접한 적이 있다. 일본계 미국인과 중국계·한국계 미국인 간의 결혼 현상이 점점 보편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문화적 환경이 다른 미국에서 동아시아계 커뮤니티 간의 교류는 이렇게 긴밀하고 심지어 쉽게 혼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반면, 우리의 고향인 동북아에서는 여전히 갈등이 끊이지 않고, 우호적인 교류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미국을 ‘작은 지구’에 비유한다면, 그 땅 위에서 우리는 이미 한 가족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진짜 지구’에서 우리는 더욱이 진정한 가족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상호 이해와 협력을 통해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일중한 관계를 구축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의미한다.
1997년, ‘아세안(ASEAN, 10)+일중한(3) 지도자회의’(이하, 아세안+3) 기간, 3국 지도자가 처음으로 공식적인 3자 회담을 가졌다. 이는 3국의 제도화된 대화 프로세스의 출발점으로 여겨진다.
2008년, 베이징(北京)에서 주중 일본대사로 근무할 때, 처음으로 아세안+3 틀에서 벗어나 단독으로 개최된 일중한 3국 지도자회의가 내 고향인 후쿠오카 다자이후시의 규슈국립박물관에서 진행됐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우리가 ‘당연하게’ 자주적으로 협의할 수 있는 플랫폼이 마침내 탄생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플랫폼을 구축한다고 문제가 바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웃 나라 간의 교류가 잦아질수록 갈등 또한 늘어나기 마련인데, 우리는 서로에 대한 이해가 매우 부족하다. 3국의 문제는 복잡하고 민감해 감정적인 대립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유일한 해결책은 상호 이해를 증진시키는 것뿐이다. 상호 이해는 존중을 낳고, 존중은 신뢰를 키운다. 현재 3국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이해의 과정을 더욱 심화하는 것이다. 우리는 열린 마음과 공정한 시각을 견지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상대방을 이해하고자 하는 지적 호기심과 탐구심이 필요하다.
우리는 다름을 배척의 이유로 삼아서는 안된다. 개방적이고 공정한 태도로 그 다름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탐색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비로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곳에는 우리와 다르지만, 똑같이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경제 번영과 국민 행복은 모두 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이미 3국 정부의 중대한 과제로 여겨진다. 우리가 공유하는 동아시아 문화의 저력은 필연적으로 동아시아의 전통 가치관을 담은 새로운 형태의 3국 관계를 탄생시킬 것이라고 믿는다.
동북아의 미래
청년 교류와 대학의 역할
글| 류창밍(劉昌明),산둥(山東)대학 동북아학원 원장
현재 국제 정세는 복잡다변하며, 세계화와 탈세계화의 흐름이 교차하고 있다. 동북아시아의 핵심 동력인 중일한 3국은 공동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동시에 광범위한 협력의 가능성도 보유하고 있다. 청년 세대 간의 국경을 넘는 교류는 단순한 문화적 공감대를 넘어 국가 이미지 형성하고 민심을 소통시키는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의 중심에는 지식 전파와 인재 양성의 핵심 기지인 ‘대학’이 대체할 수 없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대학의 특별한 가치는 여러 층위에서 발현된다. 먼저, 대학은 학술적 뿌리를 깊게 내리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다국어에 능통하고 지역 정세를 꿰뚫고 있으며, 글로벌 감각을 갖춘 ‘국가 전문가’, ‘지역 전문가’, ‘분야 전문가’ 등의 인재를 길러낸다. 학문적 ‘깊이’가 곧 동북아 협력을 추진하는 ‘따뜻한 동력’으로 전환되는 지점이다. 또 대학은 활발한 교류의 플랫폼을 제공한다. 공동 양성 프로그램, 교수 및 학생의 상호 방문, 학제 간 연구 메커니즘을 통해 청년들을 위한 풍부한 교육 자원을 접하고 교류 경로를 넓히는 기회를 마련한다. 이 밖에도, 대학은 문화 상호 이해를 증진시키는 핵심 주체다. 학술적 생산과 사회적 실천이 만나는 접점으로서 체계적인 지식 담론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 정부와 기업, 민간 등 다양한 네트워크와 연결돼 있어, 서로 다른 문화적 맥락 속에서 이해를 쌓고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교량 역할을 한다.
대학의 지닌 여러 강점은 청년 교류를 위한 다각적인 지원 체계를 받쳐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적 흐름 속에서도 간과할 수 없는 어려움도 존재한다. 우선 외부적 요인으로, 지정학적 경쟁 심화와 지역 안보 이슈의 과도한 정치화 등 외부 변수로 인해 학술 협력 프로젝트의 정책적 환경이 불확실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동시에, 중일한 간의 제도적 장벽이라는 무시할 수 없는 내부적 갈등도 존재한다. 3국의 교육 관리 체제, 학점 인증 기준, 학술 평가 시스템 등에서의 뚜렷한 차이도 학생에게 제한적인 요소로 작용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3국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사회적 협력을 강화하며, 정부 제도의 정층설계(頂層設計, 최고 차원에서의 총체적 구상)와 제도적 지원을 최적화해야 한다. 또한, 대학의 플랫폼 구축과 인재 양성 시스템을 보완해 시장의 수요와 자원을 활성화하고 ‘정부 주도-대학 협력-사회 참여’ 3차원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이외에도, 기술의 역할에 주목하고 3국 청년 디지털 협력 플랫폼을 구축하며 온라인 수업, 가상 실험실, 다국어 커뮤니티 등의 기능을 통합해 청년 세대 간의 국경을 넘는 교류의 문턱을 크게 낮춰야 한다. 사회 각계의 공통된 노력 아래 교류 제도와 플랫폼이 끊임없이 개선되고 글로벌 역량을 갖춘 융합형 인재가 더욱 많이 양성돼 동아시아의 지속가능한 발전 및 글로벌 거버넌스 시스템 혁신에 내생적 동력을 제공할 것이라 믿는다.
청년은 국가의 미래이자 동북아의 희망이다. 대학은 이들이 성장하는 ‘인큐베이터’로서 ‘바람을 타고 파도를 헤쳐 나아가는(長風破浪)’ 용기로 교류를 추진해야 한다. 또 ‘소리 없이 조용한(潤物無聲)’ 끈기로 세심한 부분을 다듬어야 한다. 청년 세대 간의 진정성 있는 교류가 일상이 되고 문화적 공감과 상호 신뢰가 계속해서 쌓일 때, 동북아 협력의 미래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