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14
중국인에게 고향은 단순한 지리적 공간을 넘어 마음속 깊이 자리한 영혼의 뿌리이자 가장 연약한 부분일 것이다. 타향살이하는 이방인들의 가슴 한편에 늘 아련하게 남아 있는 고향은, 어릴 적 떠나 수십 년에 걸쳐 각지를 떠돌더라도 결국 돌아가고픈 근원의 땅이다. 중국인은 부유하든 가난하든 고향을 다시 찾을 만큼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고향에는 어린 시절의 기억과 가족, 이웃과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있고, ‘나는 어디서 왔는가’라는 질문의 답과 ‘뿌리’를 찾는데 열쇠가 되어주기도 한다. ‘낙엽귀근(落葉歸根, 낙엽은 뿌리로 돌아간다)’이라는 말처럼, 노년이 되면 자신이 자라온 고향으로 돌아가 여생을 편안히 보내고 마지막에는 자신을 길러낸 고향 땅에 묻히기를 원한다. 그러나 고향으로 향하는 길에 언제나 설렘만이 존재하는 건 아니다. 오랜 세월 소식 없이 떠돌다 고향으로 돌아갈 때, 고향에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마음 한편에 두려움이 드리운다. 이러한 복잡하고 불안한 감정을 절묘하게 표현한 성어가 ‘근향정겁(近鄉情怯)’이다.
사자성어의 유래
‘근향정겁’은 당(唐)나라 시인 송지문(宋之問)의 <도한강(渡漢江)>에서 유래했다. “영남 밖에서 소식이 끊어진 채, 겨울이 지나고 또 봄이 왔구나. 고향이 가까워져도 마음은 더욱 두려워 동향 사람을 만나도 감히 물어보지 못하는구나. (嶺外音書斷, 經冬復歷春. 近鄕情更怯, 不敢問來人.)” 송지문은 당나라 초기 시인으로, 장역지(張易之) 형제에게 아첨한 죄로 인해 영남(嶺南) 지방의 롱주(瀧州)로 유배됐다. 신룡(神龍) 2년(706년) 봄,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낙양(洛陽)으로 돌아오며 한강을 건너던 중 이 시를 지었다. 시에서는 영남에서 가족과 소식이 끊긴 채 겨울과 봄 두 계절을 보내고 고향에 돌아갈 때, 고향에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불안해지는 그의 마음을 묘사하고 있다. 고향에 안 좋은 일이 생기진 않았을까 하는 걱정에 고향 사람을 만나고도 차마 아무것도 묻지 못한다. 이후 이 시를 바탕으로 ‘근향정겁’이라는 사자성어가 만들어졌고, 타향살이 후 고향으로 돌아갈 때 느끼는 복잡한 감정을 표현할 때 사용한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은 분명 기쁜 일이지만, 마음 한편이 괜히 불안하고 걱정되기도 한다. 귀향을 다룬 또 다른 유명한 시로 하지장(賀知章)의 <회향우서(回鄕偶書)>가 있는데, 앞서 소개한 시와 다른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어려서 고향 떠나 늙어서야 돌아오니, 고향 말은 그대로인데 귀밑머리가 하얗게 셌구나. 어린아이는 나를 마주쳐도 알아보지 못하고, 웃으며 어디서 온 손님이냐고 묻는구나. (少小離家老大回, 鄉音無改鬢毛衰. 兒童相見不相識, 笑問客從何處來.)” 당시 하지장은 86세의 고령으로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그는 자신의 고향 월주(越州) 영흥(永興)으로 돌아가는데, 이때는 그가 고향을 떠난 지 무려 50여 년이 흐른 뒤였다. 이 시에서는 오랜 세월이 지나고 고향으로 돌아간 시인의 눈에 비친 풍경과 감정을 묘사하고 있으며, 세월의 무상함과 고향에 대한 깊은 그리움과 애정을 표현하고 있다.
향수, 복잡하게 뒤엉킨 기억과 감정
고향은 마음 깊이 자리한 가장 여린 곳이다. 삶의 기억의 출발점이자, 마지막 종착점이다. 고향을 멀리 떠나 있을수록,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깊어진다. 향수(鄉愁)란 복잡하게 뒤엉킨 기억과 감정이다. 어린 시절의 추억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 고향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 담긴 애틋한 감정까지 모두 품고 있다. 오랜 시간 고향을 떠났던 사람이 고향으로 돌아갈 때,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과 혹시나 마주할지 모를 상실감에 대한 두려움이 공존한다. 가족과 친척을 만나고 싶으면서도 행여 늙어버린 그들의 모습에 슬퍼질까 봐 걱정이 된다. 모순된 감정으로 만감이 교차하며 고향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때론 망설여진다.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향수가 있다. 향수는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밥 짓는 연기, 어린 시절 친구들과 물고기를 잡으며 뛰놀던 웃음소리, 이웃집에서 풍겨오던 따끈한 밥 냄새, 여름밤을 가득 채우던 매미와 풀벌레 소리다. 고향은 마음속에 떠오르는 밝은 달과 같다. 고향을 그리워할 때마다 떠올라 고향 생각으로 인한 여려진 마음을 밝게 비춘다. 고향은 들판 위를 스치는 바람과도 같다. 외롭게 서 있는 풀과 나무를 스쳐 지나가며 그리움이 조용히 자라나도록 내버려둔다. 고향은 겨울날 내리는 함박눈과 같다. 겨우내 마음속에 쌓인 마음의 시름을 잠재우고 멀리 있는 이들을 조용히 그리워하게 한다.
문학에서 고향은 빼놓을 수 없는 주제다. 한 작가는 고향과 어린 시절은 문학 창작에 있어 평생의 주제라고 말했다. 고향이라는 주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작품 속에서 다뤄졌다. 모옌(莫言)의 작품 속 고밀(高密) 동북향(東北鄉)은 붉은 수수밭(紅高粱)처럼 생명의 기운을 가득 담고 있고, 기근과 야성이 얽힌 이 땅 위에서 환상과 현실이 융합된 이야기가 피어난다. 선충원(沈從文)이 그리워한 상서(湘西, 후난·湖南성 서부지역)에는 흐르는 물과 전통가옥 조각루(吊脚楼) 속 현대 문명이 닿지 않은 순박한 인간성과 시적인 정서가 숨겨져 있다. 자핑와(賈平凹)의 작품 속 상주(商州)는 진강(秦腔, 중국 서북 지역 전통 희곡)의 거친 창법으로 황토 지대의 황량함과 강인함을 토해낸다. 이 거칠지만 순박한 대지는 그의 작품에 거대하고 깊은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츠쯔젠(遲子建)이 그리워한 북극촌(北極村)의 눈, 오로라와 집들 사이에는 맑고도 신비로운 기운이 흐른다. 그녀의 작품 속에는 따뜻하면서도 애틋한 고향이 담겨 있다. 고향은 단순한 지리적 좌표가 아니라, 작가의 정신적 출발점이다. 고향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사투리와 풍습 이 모든 것이 독특한 문학 세계를 구성한다. 작가가 문학 속에서 고향을 그려내는 것은 기억을 건져 올리는 행위이자, 정신적 보금자리를 지켜내는 것이다.
고향은 핏줄에 새겨진 흔적과도 같다. 얼마나 멀리 떠나 있든 간에,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익숙한 고향 말과 인정미 넘치는 정취는 어느 순간 마음속으로 깊게 밀려든다. 고향에 가까워질수록 덜컥 겁도 나지만 그럼에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더욱 간절해진다. 세월이 흘러 고향의 모습은 기억 속에서 흐릿해질 수 있지만 고향을 향한 애틋한 마음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고향은 정신의 뿌리이자, 지칠 때 돌아갈 수 있는 따뜻한 피난처이며, 삶이 시작된 곳이자, 마음을 기댈 수 있는 곳이다. 고향에 눈이 펑펑 쏟아질 때마다 타향살이 이방인의 마음속에도 소복이 내려앉으며 고단한 마음을 보듬어 준다.
글|칭산(靑山)
사진 | 인공지능(AI) 생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