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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가 이야기

대나무


2025-07-10      

왕성한 생장과 생명력을 보여주는 대나무



필자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무렵, 집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모퉁이 벽에 먹의 농담이 매우 풍부하고 깊이 있게 표현된 대나무 그림 한 점이 걸려 있었다. 매일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그 그림을 흘끗 쳐다보곤 했는데 인상이 깊게 남았다. 나중에 여러 차례 이사를 했지만 그 대나무 그림만큼은 늘 눈에 잘 띄는 자리에 걸려 있었다.


평소 대나무를 보면 줄기가 길고 곧게 뻗어 있다. 한겨울을 견뎌내고도 여전히 푸른빛을 잃지 않고 그 자체로 고요하며 그윽한 풍경을 자아낸다.


중국에는 대나무를 노래한 시가 많다. 가장 오래된 것은 <시경(詩經)>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대나무와 관련된 이야기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진(晉)나라 초기의 ‘죽림칠현(竹林七賢)’에 관한 일화다. 칠현은 노장(老莊) 철학을 따랐던 일곱 명의 벗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당시 조정의 권위와 예법을 경시하며, 늘 죽림(대나무숲)에서 술과 노래를 즐기고 자유로이 청담(淸談, 세속의 명리를 떠난 맑고 깨끗한 담화)을 나누며 사유를 마음껏 펼쳤다. 이들의 삶은 오랫동안 문인들이 갈망해 온 자유로운 정신세계의 귀감이자, 세속의 영달을 초월한 삶의 상징이 됐다. 특히 곧게 뻗은 대나무는 전인적(全人的) 군자 즉, 모든 덕을 갖춘 군자의 기품을 담아내는 표상으로 자리매김했다.


대나무로 엮은 각양각색의 용기와 바구니들이다. 저자가 여러 지역을 다니며 직접 수집했다.


대나무는 정신적 측면에서 교만하지도 않으면서 비굴하지도 않은 풍격을 보여준다. 청(清)나라 시인 정판교(鄭板橋)는 ‘한두 대의 줄기와 너덧 장의 잎이 듬성듬성 자연스레 돋아나니, 어찌 빽빽하게 겹치고 얽혀 있을 필요가 있겠는가(一兩三枝竹竿 四五六片竹葉 自然淡淡疏疏 何必重重疊疊)’라는 시구를 통해 대나무의 단정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을 묘사했다. 대나무는 실생활에서도 사람과 가장 밀접한 식물로, 거의 모든 부분이 유용하게 쓰인다. 줄기로는 울타리를 만들 수 있고, 잎은 찹쌀로 만든 전통 음식인 쭝쯔(粽子)를 감싸는 데 쓰인다. 여린 죽순은 식용이 가능하며, 이를 발효시켜 말리면 순간(筍乾, 말린 죽순)이 된다. ‘새 죽순이 자라 사랑채 아래의 대나무가 되면(新筍已成堂下竹)’이라는 이청조(李淸照)의 시구처럼 다 자란 대나무는 건축 자재는 물론 공예품, 가구 등의 재료로 두루 활용된다. 과거 타이완(臺灣) 시골에는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대나무로 축조한 집인 ‘죽관조(竹管厝)’가 흔했다. 집 안에서는 탁자, 의자, 침대, 유모차, 장난감, 바구니, 심지어 종이까지도 대나무로 만들 수 있었다. 밭에서 쓰는 광주리, 청소용 빗자루, 식탁의 덮개에 이르기까지 대나무는 사람들의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었다.


‘대나무’를 주제로 한 작품


죽람(竹籃), 대바구니는 실용적일 뿐 아니라 정교한 짜임새와 형태의 미학을 담아내는 예술적 공예품이다. 다양한 곡선과 조형의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중국에서는 대부분 주방에 반짇고리, 과일, 말린 식재료 등을 담기 위한 대나무 바구니가 으레 놓여 있다. 필자가 이곳저곳에서 수집한 바구니와 소쿠리들도 각각의 용도는 물론,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대나무 제품은 바로 ‘죽부인(竹夫人, 주로 여름에 사용하는 대나무 침구류의 일종)’이다. 실용적이면서도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 물건은 가느다란 대나무 살로 정교하게 엮어 만들었는데 속이 비어 있다. 생김새는 베개와 비슷하지만 베개보다 훨씬 얇다. 에어컨이 없던 시절 잠자리에서 무언가를 꼭 끌어안고 자는 사람들에게는 획기적인 발명이었다. 실제 사람을 안고 자기에는 더우니, 그 대안으로 시원한 대나무 베개가 고안된 것이다. 게다가 이름이 ‘죽부인’이라니, 이보다 더 절묘하고 재치 있는 발상이 또 있을까.


대나무의 가장 큰 특징은 수십 년, 심지어 백 년 이상 자라야 쓸 수 있는 목재와 달리 생장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최근 친환경 소재로 각광받으며 여러 가지 신소재 연구 개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예컨대 천연 미네랄을 함유한 죽탄(竹炭, 대나무 숯)은 다공성(多孔性) 물질로, 습도 조절과 수질 정화는 물론 원적외선 방출 효과까지 지녔다. 대나무 기반의 신소재는 건축 자재뿐 아니라 섬유, 수건, 의류 등에도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다.



<전가> 소개

타이완(臺灣) 작가 야오런샹이 7년 만에 탈고한 역작으로 각각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권으로 이뤄져 있다. 각 권마다 6개의 주제로 나뉘며, 유려한 글과 생동감 넘치는 사진으로 중국인들의 계절별 생활 방식과 전통문화를 기록했다. 저자는 자신의 ‘전가’를 통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저마다의 ‘전가’를 갖게 되기를 희망한다. 이 책은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소장해야 할 ‘전통문화 백과사전’이자, 과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중국인의 생활 속 지혜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외국인들을 위한 ‘입문서’이기도 하다.



저자 소개

야오런샹(姚任祥), 중국의 유명 경극 배우 구정추(顧正秋)의 막내딸이자 국학(國學) 대가 난화이진(南懷瑾)의 제자. 16세에 데뷔한 ‘1세대 캠퍼스 민요 가수’ 중 한 명이다. 타이완의 유명 건축가 야오런시(姚仁喜)의 아내이자 세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주얼리 디자이너로 20년 넘게 아름다운 작품을 디자인했으며, 작가로서 해외에서 유학 중인 중국 청년들이 전통문화를 잊지 않도록 가르침을 전수하기 위해 <전가>를 직접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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