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29
매미 소리가 요란하고 유난히도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올 여름, 필자는 문득 23년 전 흥분의 열기로 가득했던 여름날이 떠오른다.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것이다. 월드컵 경기가 최초로 동아시아 대륙에서 개최되었던 바로 그 해, 나 또한 가오카오(高考, 대학 입학시험)를 치렀다.
축구팬이었던 나는 가오카오가 코앞이었지만 월드컵 경기를 놓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심장이 쫄깃한’ 관전 기억을 품은 채 고사장에 들어갔고 결국 나는 베이징(北京)대학 조선어(한국어)과에 입학했다. 운명의 묘한 톱니바퀴는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놓으며 지금까지도 한국과 긴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잊을 수 없는 기억 중에서도 으뜸은 온 세상을 뒤덮었던 열정적인 붉은색이었다. TV 중계를 통해 전 세계인은 처음으로 한국의 ‘붉은악마’의 위력을 목도했다. 붉은 옷을 입고 머리에 번쩍번쩍 빛나는 붉은 악마 뿔 머리띠를 착용한 한국 축구팬들이 서울 시청광장 등 거리 응원지에 운집했다. 그들은 다 함께 “대~한민국!!”을 외쳤고 이는 한국을 대표하는 스포츠 응원 구호가 됐다.
사실 ‘붉은악마’ 응원 문화는 1990년대 후반부터 싹트고 있었다. 월드컵은 이 붉은 물결이 전 세계를 뒤흔든 계기가 됐다. 그들은 기존 TV 중계를 보며 응원하는 소극적인 방식에서 벗어났다. 남녀노소 할 것이 없이 밖으로 나와 경기장과 도심 광장을 승리의 염원으로 물들였고 새로운 공공 응원 문화를 탄생시켰다.
이후 20여 년 동안 한국의 스포츠 응원 문화는 진화를 거듭했다. 특히 K팝과 아이돌 산업 등 대중문화와 깊이 융합하며 함께 발전했다. 프로야구 리그에서는 각 팀마다 고유한 응원가와 상징적인 응원 동작을 갖추고 있다. 여가에 아이돌 콘서트 무대의 인터랙티브 연출을 경기장에 도입하기도 했다. 투수가 등판할 때는 화려한 조명이 번쩍거리고 타자가 등장할 때는 그 선수의 전용 배경음악(BGM)이 흘러나온다. K팝 팬덤 문화의 응원법 ‘팬챈트(fanchant)’ 문화 역시 경기장의 함성 문화와 서로 시너지를 내며 경기에 열기를 더한다. 이밖에 소셜미디어 시대가 도래하면서 온라인을 통한 ‘클라우드 응원’이라는 새로운 방식까지 등장했다. 오늘날의 스포츠 관람은 경기 자체를 넘어서 취향을 공유하는 이들이 모이는 사교의 장이자 집단적 감정을 분출하는 해방의 장이며 모두가 함께 즐기는 문화 축제의 정점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 몇 년 동안 나는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1km도 안 떨어진 곳에 살았다. 이곳은 한국프로야구(KBO) 리그의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의 홈구장인 잠실야구장이 위치한 곳이다. 야구 시즌이 되면 귀가 먹먹할 정도의 축포 소리가 어느덧 주말의 배경음이 됐다. 나는 야구 규칙은 잘 모르지만 그 소리에 이끌려 노천 경기장으로 들어가 귀가 터질 듯한 응원 소리 속에 그저 ‘분위기 관중’으로 몰입해 본 경험이 있다.
뜨거운 응원 열기는 비단 한여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계절 내내 경기장 안팎에서 솟아오르는 열기는 선수와 관중의 피를 뜨겁게 달군다. 이는 곧 한국 스포츠 문화의 생생한 증표이기도 하다.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경기장을 찾아 시공을 초월하는 열정과 환희를 직접 느껴보길 바란다.
글|쑹샤오첸(宋筱茜), 한국 이화여자대학교 한국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