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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한 항쟁 기억의 발자취를 찾다

재중항일역사기념사업회 회장 홍성림 인터뷰


2025-08-13      

2024년 5월 17일 톈진(天津)에서 열린 <독립운동가의 톈진 발자취를 찾아서> 특별 강연 행사에서 홍성림 회장이 ‘톈진과 한국 독립운동’을 주제로 강연했다.


1910년, 일본은 <일한병합조약>을 통해 조선반도(한반도)를 강제 합병하고 35년에 걸친 식민 통치를 시작했다. 국권을 잃은 치욕 속에서도 한국인들의 항일 독립운동은 단 한순간도 멈춘 적이 없었다. 특히 1919년, 민족 독립을 외친 3·1 운동 좌절 이후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조국 광복’이라는 염원을 안고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망명해 독립운동의 명맥을 이어나갔다. 이들은 상하이(上海), 충칭(重慶), 베이징(北京), 하얼빈(哈爾濱) 등 주요 거점을 중심으로 임시정부 수립, 항일 단체 결성, 독립군 부대 창설 등 전방위적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이들은 중국 군민과 연대해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전선에 몸을 던졌다. 국경을 넘나든 항쟁의 역사는 한국 독립의 주춧돌이 됐으며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우는 과정에서 두 나라 국민은 깊은 우정을 맺었다. 이러한 유대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 의미가 더욱 커졌고, 오늘날 중한 간 우호 교류의 맥락 속에서 선명하게 드러나며 양국 관계에서 더없이 귀중한 역사적 자취로 남아 있다.


올해는 중국 인민 항일전쟁 승리 80주년이자 한국 광복 80주년이 되는 해이다. 현재 중국에는 여전히 한국의 독립운동사 발굴에 힘쓰는 전문가와 관련 단체들이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그중에서도 홍성림 회장이 설립한 ‘재중항일역사기념사업회’는 대표적인 민간 독립운동사 연구 단체다.


한때 한국 독립운동의 중요한 무대였던 베이징에는 많은 역사적 흔적이 남아 있다. 2022년 1월 6일, 홍성림 회장과 재중항일역사기념사업회 회원들은 한국의 저명한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이육사 열사의 순국일을 맞아 베이징시 둥청(東城)구 둥창후퉁(東廠胡同)을 찾아 이육사 열사가 순국한 자리(옛 일본 헌병대 터)에서 묵념했다. 회원들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열사의 뜻을 기리며 제사를 올리고 깊은 추모와 숭고한 경의를 표했다.


중국에 남겨진 공동 항쟁의 기억

월간 <중국>과 인터뷰 당시, 홍 회장은 하얼빈 현지 조사를 마치고 베이징으로 막 돌아온 직후였다. 그에게 중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한국 독립운동 사적지를 답사하는 일은 이미 오래전부터 삶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역사 전공자도 아닌 그가 이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는 우연한 기회에서 비롯됐다. 2018년, 중국에서 관광업을 하던 한국 친구가 3·1운동 기념일을 맞아 베이징에 거주하는 한인들을 모아 독립운동 관련 사적지를 답사하자고 제안한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 그의 역사 인식은 책 속에서 배운 것이 전부였다. “한국의 여러 독립운동가들이 중국에서 활동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 또한 그저 막연하게 인식할 뿐이었다.”


그러나 사적지를 찾아간 날, 독립운동 선열들이 활동하고 살아 숨 쉬던 베이징의 후퉁(胡同), 옛 건물과 마주하자 홍 회장은 전례 없는 충격에 휩싸였다. “평소 친구들과 자주 다니던 이 골목에 한국 열사들의 발자취가 숨어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순간, 추상적이기만 했던 역사 지식이 갑자기 손에 잡힐 듯한 생생한 현장으로 바뀌었다. 중국에서 20년 넘게 살았지만, 민족의 운명이 걸린 항쟁의 역사가 이토록 가까이 있었는데도 까맣게 모르고 지냈다는 것을 처음으로 절실히 깨달은 순간이었다.



2023년 5월 2일부터 4일, 홍성림 회장과 사업회 회원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상하이 청사를 방문하고 쑹칭링(宋慶齡, 송경령) 능원 내 만국공동묘지 외국인 묘역에 안장된 한국 독립운동 열사들의 묘소를 참배해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렸다.


내가 마땅히 알아야 될 역사적 사실을 모르고 그냥 살았던 건 아닌가. 스스로에게 던진 이 뼈아픈 질문은 훗날 홍 회장이 중국 땅에 뿌리내린 항쟁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배우고 연구하는 출발점이 됐다.

“처음부터 거창한 목표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홍 회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그저 이 땅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러다 함께할 동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공부하다 보면 가끔 지루할 때가 있다. 그래서 뜻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보자고 결심했다.”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학습과 답사를 위해 정식 명칭도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탄생한 것이 바로 ‘재중항일역사기념사업회(이하 사업회)’이다.


사업회가 설립된 후 회원들은 1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베이징 곳곳의 거리와 골목에서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 홍 회장은 역사에 열정을 가진 재중 한인들과 함께 주말을 이용해 사료를 연구하고 이를 정리한 단서를 바탕으로 베이징 시내를 누비며 그들이 반복적으로 연구했던 독립운동 사적지를 하나하나 찾아 나섰다.


베이징 시내를 지속 탐방하며 역사 현장을 찾아 나섰던 사업회는 곧 중국의 더 넓은 지역으로 시야를 넓혔다. 연구가 깊어질수록 독립운동 선구자들이 활약한 지역들이 점점 더 뚜렷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홍 회장은 “독립운동 선구자들의 발자취가 거의 중국 전역에 퍼져 있었다는 사실은 나도 미처 몰랐던 부분이다”라고 털어놨다. 

 

연구가 깊어지면서 사업회는 매년 답사대를 조직해 중국 각지를 직접 찾아가고 있다. 또 문헌 연구와 현장 조사를 병행하며 역사적 사실을 끊임없이 검증하고 정리해 왔다. 홍 회장은 “이렇게 해마다 꾸준히 노력을 이어온 덕분에, 사업회는 이제 중국 전역 방방곡곡을 다니며 중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일본에 맞선 공동 항쟁의 기억을 좇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2018년 8월, 답사단은 허베이성 한단(邯鄲)시 서(涉)현에 있는 조선의용대 유적지를 찾았다. 이들은 아흔을 바라보는 왕차오즈(王巧枝) 할머니(앞줄 가운데)와 깊은 대화를 나눈 뒤 이 사진을 남겼다. 할머니는 항일전쟁 때 의용대에게 거처를 제공했던 역사의 증인으로, “언어가 통하지 않던 의용대가 손짓과 몸짓으로 의사 소통했고, 농번기에는 앞다투어 농사일을 도왔다”라며 당시를 회고했다.


우리 모두는 역사의 계승자

독립운동 열사들의 발자취를 되짚는 과정에서 홍 회장은 태항산(太行山) 일대에서 대대적으로 전개된 중한 공동 항일운동 역사가 가장 가슴 깊이 와 닿았다고 말했다.


1938년, 한국 독립운동가 김원봉 선생은 중국 정부의 지원 아래 우한(武漢)서 한국 독립무장부대 ‘조선의용대를 창설해 이끌고 항일 전선에 적극 뛰어들었다. 홍 회장은 이 역사적 사실의 특별한 의미를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당시 중국도 위태로운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중국의 지원은 단순한 재정적 원조를 넘어선 것이었다. 대규모 인력 투입과 사회 전반의 공감대 없이는 사실상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다른 나라가 자국 영토 내에서 군대를 조직하도록 지원한다는 건 서로가 ‘운명공동체’라는 인식이 없었다면 결코 이뤄질 수 없었던 일이다.”


이 ‘특수부대’는 이후 태항산 산간 지대에서 팔로군(八路軍)과 긴밀히 군사 작전을 펼쳤고, 1941년 일명 ‘반소탕전투’를 비롯해 치열한 항전에 직접 참전했다. 이 과정에서 팔로군의 부총참모장 줘취안(左權)과 조선의용대의 장교 진광화, 석정 등이 최전선에서 전사했다. 이들의 유해는 훗날 허베이(河北)성 한단()시 서(涉)현 스먼()촌에 안장돼 국경을 초월한 진정한 생사동맹으로 후세에 길이 기억되고 있다.



2022년 8월, 사업회 회원들은 허베이(河北)성 스자좡(石家莊)시 황베이핑(黃北坪)촌에 위치한 조선의용대 전적지 옛터와 조선의용군 열사 기념원을 방문했다. 이곳은 1941년 12월 12일 의용대가 위안스(元氏)현 후자좡(胡家莊) 전투에서 항일 현(縣) 정부를 보호하기 열 배 이상 많은 적과 맞서 싸운 격전지다. 이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한 의용대 손일봉, 박철동, 한청도(또는 최철호), 왕현순(또는 이정순)은 황베이핑(黃北坪)에 안장됐다.


태항산 자락에 위치한 서현에는 조선의용대의 항일 유적이 다수 남아 있다. 현지 지방 정부는 이러한 역사 유산의 보존과 계승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항일 순국열사 공묘를 정성껏 관리하는 것은 물론 조선의용대의 항전 업적을 기리는 특별기념관도 건립했다. 최근 몇 년간, 홍 회장은 팀을 꾸려 정기적으로 이곳을 방문해 탐방과 조사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홍 회장은 “책이나 자료로만 보는 것과 별개로 직접 역사 현장에 가서 느끼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라고 설명했다. “현장을 직접 방문하면 한중 협력의 심오한 영향과 의미를 더 직관적으로 체감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국 현지 주민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며 이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서로 인식과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 그는 이어 “우리 모두 그 시기를 직접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그 역사의 후대란 점에서 연결돼 있다. 중국 주민들은 조부모에게서 전해 들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우리는 학습한 사료를 배경 삼아 역사 현장이라는 공간에서 서로 만나고 부딪힐 때, 바로 이러한 감정이야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생생하고 따뜻하게 마음을 울리며 역사의 의미를 깊이 새기게 한다. 설령 우리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기억할 가치가 있는 역사’를 가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대화를 나누며 자연스레 동질감이 생기고, 시공간을 넘어 마음으로 통하는 유대감을 느낀다.”


지난  년간, 홍성림 회장과 사업회 회원들은 중국 각지를 답사하며 한국의 독립운동 관련 유적지를 체계적으로 조사해 왔다. 사진은 2023년 10월, 이들이 산시(山西)성 진중(晉中)시 쭤취안(左權)현 퉁위(桐峪)진 상우(上武)촌을 방문한 모습이다. 이곳은 1940년 7월부터 1942년 2월까지 조선의용대가 현지 무장군과 연합해 일본군과 수차례 전투를 벌였던 지역으로, 이 과정에서 다수의 의병이 장렬히 희생됐다.


홍 회장의 말처럼, 공통된 역사의 기억에서 비롯된 유대감은 현장을 직접 방문할 때 비로소 깊이 체감할 수 있는 소중한 가치이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중국 땅에서 전개된 한국의 독립운동사는 중한 양국이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힘을 합쳐 싸웠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이다. 이 역사는 양국 국민이 고난 속에서도 손을 맞잡고 서로를 도왔던 전통적 우정의 상징이며, 오늘날 중한 관계 발전에도 귀중한 역사적 거울이 되고 있다.



2022년 7월 9일, 홍성림 회장이 이끄는 답사단이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을 찾은 모습이다. 기념관 내 ‘조선반도 독립운동 지원’ 전시관에는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윤봉길 의사의 일본 육군대장 시라카와 요시노리 폭살 의거, 한국광복군의 창설과 훈련 등 주요 사건들이 소개되어 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한국 한강 작가가 던진 이 시대의 철학적 물음은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한국 사회 전반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홍 회장은 인터뷰 말미에 ‘한강의 질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과거에 일어난 일들로  지금의 우리가 존재하게 된 것이다. 지나간 과거를 제대로 알고, 잘한 점과 부족한 점을 정확히 인식해야 현재를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 현재를 잘못 없이 충실히 살아야만 우리도 더 나은 미래를 향해 굳건한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홍 회장의 견해에 따르면, 근대 한중 공동의 항전 역사를 되짚어 보는 것은 당면한 현실에 지극히 중요하고 절박 의미를 갖는다. 비록 식민지 시대의 총칼은 사라졌지만, ‘경제 전쟁’을 포함한 새로운 형태의 위협과 충격은 언제든 다시 닥칠 수 있기 때문이다.


홍성림 회장에게 위안이 되는 것은 점차 더 많은 젊은 세대가 역사 전승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3년 12월 15일, 홍 회장은 칭다오 한인 유학생 답사단을 이끌고 현지의 항일 독립운동 유적지를 탐방했다. 답사단은 역사적 현장을 직접 체험하며 정체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문화적 기억을 깊이 새겼다.


“사실 우리는 매우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홍 회장은 이렇게 지적하면서 “하지만 동아시아 국가들은 국경을 맞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운명을 함께하는 이웃이다. 우리는 근대 독립운동사에서 양국 연대의 역사를 정확히 알고, 앞으로 유사한 상황이 닥쳤을 때 어떻게 그런 연대를 다시 맺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어쩌면 그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해법일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미래는 섣불리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덧붙였다. “역사는 우리가 강력한 공동의 적을 마주했을 때 ‘운명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연대했음을 증명했다. 나는 앞으로도 그런 순간이 올 것이라 믿는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과거에서 지혜를 얻고 공동의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사업회는 그간의 한국 독립운동 유적지 탐방을 통해 방대한 영상 자료를 축적해 왔고, 2019년부터는 매년 3·1운동 기념일 전후로 베이징에서 사진전을 개최하고 있다. 사진은 2024년 3월 1일부터 3일까지 주중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사진전으로 소중한 사진들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저항 세월과 중한 양국이 함께했던 항일 투쟁의 역사적 유대를 관람객들에게 생생히 전달하고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일반 대중이 역사 인식을 넓힐 수 있는 길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이런 역사가 학자들만의 고유 영역이었고, 일반인들은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적지를 직접 탐사하려는 시민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홍 회장은 한 가지 제안을 내놓았다. “현재 중국 정부가 시행하는 한국인 무비자 정책은 정말 좋은 기회다. 한국 관광객들이 중국을 여행할 때 유명 관광지만 둘러보는 것이 아니라, 한중 공동 항쟁의 기억이 서린 땅도 함께 찾아가 봤으면 좋겠다.” 홍 회장은 선열들의 뜨거운 피가 스며든 사적지에 발을 디딜 때, 국경을 넘어 역경을 함께 헤쳐 나간 감정이 오늘날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다시 살아날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 왕윈웨(王云月)

사진| 홍성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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