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28
최근 드라마 <장안적려지>가 중국에서 절찬 방영됐다. 이 드라마는 열대과일 여지(리치, lychee)를 매개로 파란만장했던 성당(盛唐) 시기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이야기는 상림서(上林署) 하급 관리인 이선덕(李善德)이 뜻하지 않게 동료의 계략으로 ‘여지사(荔枝使)’라는 중책을 맡게 되면서 시작된다. 귀비를 위해 영남(嶺南)지역에서 신선한 여지를 장안(長安)까지 운송해야 하는, 얼핏 보면 단순해 보이는 이 임무는 점차 사람들의 탐욕과 권력 다툼이 얽히며 거대한 소용돌이로 변해간다. 한편 좌상의 밀명을 받고 우상의 비리를 추적하던 접대 시랑 정평안(鄭平安)은 신분을 위장해 영남으로 잠입한다. 처남과 매형 사이인 이선덕과 정평안은 영남에서 우연히 만나 갖은 고난 끝에 여지를 신선하게 운반할 방법을 찾는다. 이 과정에서 이선덕은 화려함 뒤에 숨겨진 허망함을 깨닫고 자신의 공을 우상이 가로채도록 놔두는 한편, 여지와 산자나무(갈매보리수나무) 열매를 같이 넣어 숙성을 앞당긴다. 결국 황제가 상한 여지를 먹게 되고, 좌상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여지를 운반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권력자들의 탐욕을 폭로한다. 그리하여 백성을 수탈하고 국고를 낭비하던 ‘여지 운송’이라는 무모한 사업은 막을 내리게 된다. 반면 이선덕은 권력의 중심에서 물러나 딸과 함께 영남으로 떠나 평범한 인생을 살기로 한다.
<장안적려지>는 ‘이중 플롯’이라는 서사 방식을 통해 황홀했던 성당시대 이면에 감춰진 부조리와 허상을 날카롭게 해부한다. 한 축은 필멸적인 임무에 던져진 하급 관리 이선덕의 여지 운송기를 쫓는다. 또 다른 한 축에서는 냉혹한 관료 사회의 암투 속으로 뛰어든 정평안을 둘러싼 권모술수가 펼쳐진다. 이 두 상황이 ‘여지 운송 임무’를 통해 긴밀하게 연결돼 권력과 민생의 대립 구도를 형성한다. 이는 극적 긴장감을 높이는 동시에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성당 시대의 화려한 모습 뒤에 감춰진 권력 게임의 부조리함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귀비의 웃는 얼굴을 한 번 보겠다는 황제의 명령에 조정은 7만 6천 관(貫)이라는 막대한 돈을 들이고 파발마 30여 마리가 죽었으며 이동 경로에 있던 역참의 부역민들은 엄청난 부담에 신음했다. 다섯 개의 부(府)와 열일곱 개의 주(州)가 모두 오직 단 한 바구니의 여지를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이선덕이 당시 당나라 운송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어 신선한 여지를 장안까지 운반하는 ‘기적’을 만들어낸 것은 기술적으로 두말할 나위 없는 성공이었다. 하지만 그 가치적인 측면은 실패로 기록될 수밖에 없었다. 전국적으로 큰 소동을 일으키고 백성들을 괴롭히며 물자를 낭비한 끝에 얻어낸 것은 겨우 황제의 사사로운 욕망을 채우고 귀비의 무심한 한마디 “아직 신선하네”라는 말뿐이었다.
이 드라마는 거대한 역사적 배경과 소시민의 운명을 절묘하게 엮어낸다. 이선덕은 백성의 고통과 소소한 삶을 보여주고, 정평안은 조정의 음모와 권력의 부패를 드러냄으로써 ‘당나라의 세속적 풍경’을 보여줘 권력 게임의 부조리함과 개인의 분투의 허무함을 강렬하게 대비시킨다. 특히 이선덕이라는 캐릭터는 시청자가 화려했던 당나라 시대로 몰입하게 만드는 창구 역할을 한다. 그는 영웅이 아니다. 단지 운명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평범한 한 인간일 뿐이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여지 재배 농민을 착취하고 이민족 상인을 속이면서 도덕과 생존 기로에서 고뇌한다. 도덕과 생존이 충돌할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메커니즘이 우리에게 타협을 강요할 때 우리는 초심을 지킬 수 있을까? 과거와 현재, 동서양을 초월하는 감정은 이 드라마가 단순히 역사의 재현으로 끝나지 않고 관객의 폭넓은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다.
글ㅣ장위스(張雨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