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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부신공, 예술적 혼이 깃든 석굴 문화


2025-06-27      



석굴 문화는 중국에서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불교가 전래됨에 따라 함께 발전하기 시작해 동한(東漢) 시기에 최초로 등장했고 수당(隋唐) 시기에 전성기를 맞이했다. 석굴 예술은 벽화, 조각, 건축, 역사가 하나로 융합된 종합 문화로 연구 및 감상의 가치가 매우 높다. 석굴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자주 ‘귀부신공(鬼斧神工)’이라는 표현으로 그 예술적 경이로움을 형용하곤 한다. 이 성어는 귀신의 도끼로 만든 신의 솜씨라는 뜻으로 도저히 사람의 능력으로는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은 뛰어난 예술적 기교나 기량을 말한다. 석굴 문화는 예술성이 뛰어난 문화로서 오늘날 각국의 사람들에게 널리 사랑받고 있다.


장자(莊子) 우화 속 장인의 솜씨

성어 ‘귀부신공’은 <장자>에서 나온 말이다. 우화에서 유래된 성어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노(魯)나라에는 경(慶)이라는 이름의 솜씨가 매우 뛰어난 목수가 있었다. 그는 여러 종류의 정교한 목제품을 만들어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어느 날, 경은 나무를 깎아 거(鐻, 악기 걸이대)를 만들었다. 거의 형태가 아름답고 무늬가 정교해 그것을 본 사람들은 모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솜씨가 너무 뛰어났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이 인간이 만든 것이라 믿기 어려웠고 마치 귀신이 만든 것 같다며 놀라워했다.


노나라 군주가 나무로 만든 거를 보고 연신 감탄하며 경에게 물었다. “요술을 부린 것이 아닌가?” 경은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그저 평범한 사람입니다. 무슨 특별한 신술이 있겠습니까?” 국왕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만든 것인가?” 경이 답했다. “저는 거를 만들 때 잡념 없이 모든 정신을 집중합니다. 심지어 너무 집중한 나머지 저의 사지 형태를 잊어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나서 산 속에서 자세히 관찰하면서 가장 적합한 목재를 찾습니다. 만드는 과정에서도 마음속으로 거만 생각하며 모든 정성을 쏟아내고 주관적 편견이 개입하지 않도록 합니다. 이렇게 오롯이 집중해서 정교하게 조각하면 좋은 거를 만들 수 있습니다.” 국왕은 비로소 거가 마치 귀신이 만든 것처럼 뛰어난 이유를 깨달았다.

  

석굴 예술이 ‘귀부신공’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사람들을 감탄하게 하는 예술적 매력과 건축적 경이로움 때문이다. 석굴은 대체로 규모가 방대하다. 둔황(敦煌) 막고굴(莫高窟)은 735개의 동굴과 수만 제곱미터의 벽화, 천여 개의 채색 조각상(彩塑)이 있으며 그 공정 또한 상상을 초월한다. 이 조각들을 살펴보면, 불상과 보살상 등의 세부 묘사가 매우 정교하고 섬세하다. 얼굴 표정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하고 의복의 선이 유려하고 자연스럽다. 석굴은 조각, 회화, 건축 등 다양한 형태를 융합해 깊은 내면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으며 대부분 절벽과 벼랑을 깎아 만들어졌다. 고대 기술이 매우 제한된 상황에서 장인들은 숱한 어려움을 극복하며 석굴을 완성했다. 그들의 정교한 솜씨와 비범한 창의력이 마치 신의 손길로 창조된 듯해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석굴 예술과 불교 문화

서기 4세기부터 8세기 사이에 걸쳐 인도 불교의 건축 예술은 실크로드를 따라 동쪽으로 전파됐다. 신장위구르자치구(新疆維吾爾自治區)의 쿠처(庫車), 간쑤(甘肅)의 둔황, 산시(山西)의 윈강(雲崗), 허난(河南)의 룽먼(龍門), 허베이(河北)의 남·북 샹탕산(響堂山) 등 현존하는 고대 석굴들이 바로 인도 석굴 조형 예술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이다. 중국에 현존하는 4대 석굴이 있는데 이는 모두 중국 불교문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석굴이다. 석굴이 만들어진 시기에 따라 나열하면 간쑤 둔황 막고굴, 간쑤 톈수이(天水) 마이지산(麥積山) 석굴, 산시 다퉁(大同) 윈강 석굴, 허난 뤄양(洛陽) 룽먼 석굴 순이다.


4대 석굴은 각각 뚜렷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막고굴은 건축, 조각, 벽화가 완벽하게 융합된 걸작으로 ‘세계 예술의 보고’라고 불린다. 윈강 석굴은 농후한 중국식 건축과 장식 스타일이 드러나는 석굴로 불교 예술이 중국 문화 속에서 녹아들고 변화된 양상을 잘 드러낸다. 룽먼 석굴은 황실의 의지와 행위를 보여주는 석굴로 당시의 정치적 흐름과 사회·경제 발전 상을 담고 있다. 마이지산 석굴은 매우 아슬아슬한 곳에 위치해 있다. 가파른 절벽 위에 동굴을 파서 조성했고, 동굴 사이는 아찔한 잔도로 연결했다.


허시회랑(河西走廊)에서 중원(中原)지역에 이르기까지 시간과 공간의 여정에서 석굴 예술은 문화의 다양성과 포용성을 보여주며 불교문화가 중국에서 발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예를 들면, 둔황 벽화에는 불교 경전 이야기, 역사적 전설, 의식 등이 묘사돼 있다. 석가모니 불전(佛傳), 본생(本生), 인연 등 이야기는 인류의 지혜와 사상을 보여준다. 석굴 안의 불상, 보살상 등 조각상은 불교 조형의 기본적인 특징을 유지하면서 점차 중국인의 미적 감각과 예술 양식을 융합했다. 불상의 얼굴은 한층 자애롭고 위엄있게 다듬어졌으며 체구는 더욱 풍만하고 아름답게 변모했다. 이러한 변화는 불교 조각상이 중국 고유의 예술적 감각과 문화적 특성을 반영하며 현지화된 과정을 뚜렷이 보여준다.


석굴 문화는 중국 고대 예술의 눈부신 결실을 보여주며 풍요로운 역사·문화적 정보를 담고 있다. 또한 불교 전파와 문화 교류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렇기에 석굴 문화를 ‘귀부신공’이라 칭하는 것도 결코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거대한 불상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그 웅장함을 마주하노라면 조각과 회화 등 예술의 정교함에 절로 감탄하게 되고 신의 손길이 깃든 듯한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오늘날 석굴 문화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그 가치를 인정받았으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를 통해 중국 문화의 심오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있다.  


글|칭산(靑山)

사진 | 인공지능(AI)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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